[밀레니엄 명반] 8.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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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화합과 협력이 협주곡의 전부는 아니다.

독주악기가 오케스트라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목소리를 내며 개성을 발휘하다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0번 d단조 K. 466' (1785)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교향적 협주곡' 의 전형이다. 피아노가 한낱 우아한 선율을 곁들이는 것으로 그치는 귀족취미의 갤런트 양식에서 벗어나 있다.

사회(오케스트라)의 틀에 순응하지 않고 갈등하고 충돌하는 개인(피아노)의 모습이 다. 모차르트에게 d단조는 빈에서 프리랜서 작곡가를 꿈꾸었던 그가 냉혹한 현실에서 겪어야 했던 좌절감의 반영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 곡이 널리 연주된 것도 이 때문이다. 베토벤은 카덴차(독주자의 기교를 자랑하는 종결부)까지 직접 작곡했다.

오케스트라가 음울한 분위기의 리듬만 깔리는 주제를 제시하면 피아노는 전혀 다른 주제를 연주하면서 딴청을 부린다. 오케스트라가 여러번 '구애' 의 제스처를 보내지만 끝내 자기 목소리를 고집한다. 극적인 정열과 함께 반항기로 가득찬 음악이다.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53)가 건반 앞에서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77년 녹음(소니 클래시컬)은 그의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앨범에도 포함돼 있다.

페라이어는 관현악의 색채를 한껏 살리면서도 명료한 음색으로 견고한 음향 구조물로 완성해냈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빚어내는 피상적인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깊이있게 그려낸다.

피아노로는 내적인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맑고 명랑한 음색을 들려준다. 베토벤의 카덴차(1악장)과 페라이어가 직접 작곡한 카덴차(3악장)을 비교 감상하는 것도 이 앨범이 주는 재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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