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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57> 중국 건국 60주년 열병식의 첨단 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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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력 증강 속도가 눈부시다.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앞에선 성대한 열병식이 펼쳐졌다. 이날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14개 도보 부대, 30개 장비 부대, 12개 공중 부대 등 총 56개 부대가 사열을 받았다. 4732명으로 이뤄진 도보 부대는 3305자루의 최신 총기로 무장했다. 장비 부대는 각종 무기 530대와 미사일 108발을 선보였으며, 12개 편대 15개 모델의 공중 부대 비행기 151대가 천안문 상공을 날았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크루즈미사일 ‘창젠-10’은 항공모함 킬러

중국의 14번째 열병식은 과거와 달랐다. 1949년 10월 1일 같은 장소에서 펼쳐진 열병식에선 기병이 탄 말을 제외하곤 모두 외국산 무기였다. 50년대 10차례 열린 군사퍼레이드는 기존 무기에 페인트칠만 새로 한 채 행진하는 수준이었다. 25년 만에 펼쳐진 84년 열병식에선 ‘79식 탱크’ ‘83식 152㎜자주포’ ‘쥐랑(巨浪)-1형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이 첫선을 보였으나 대부분 실험실용으로 3~4년 후에야 실전 배치됐다. 99년에는 나토군에 의한 주유고대사관 오폭으로 상처받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98식 탱크’ ‘둥펑(東風)-3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젠훙(殲轟)-7’ 전폭기 등 최신 무기들을 대거 출동시켰다. 하지만 이들 무기 역시 개발 중인 모델들로 ‘근육 자랑’과 자기 위안용에 불과했다. 올해 열병식에는 모두 현역부대에 실전 배치돼 운용 중인 무기들이 등장했다. 사상 처음으로 인민해방군 실전 무기들의 수준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올해 열병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무기는 ‘둥펑-31A형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창젠(長劍, 긴 칼)-10형 크루즈미사일’이었다. 전 세계 군사전문가들은 차세대 전략핵미사일 ‘둥펑-41’과 ‘쥐랑-2’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중국은 ‘새얼굴’보다는 기존 무기의 ‘업그레이드’를 선택했다. 사거리 8000㎞로 미국 동부의 워싱턴과 뉴욕 타격이 불가능했던 ‘둥펑-31’과 달리 ‘둥펑-31A’는 사거리가 1만1200㎞ 이상으로 향상됐다. 홍콩 시사전문지 ‘광각경(廣角鏡)’은 ‘둥펑-31A’가 경량화와 고체연료 탑재에 성공해 도로상에서 이동 발사가 가능해졌으며, 궤도가 불규칙해 미국의 미사일방어(MD)망 무력화에도 성공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게다가 중국은 로켓에 위성 3개를 탑재하는 기술을 80년대에 이미 개발했다. 즉, 천안문 열병식에 참가한 12기의 ‘둥펑-31A’를 볼 때 중국은 핵공격을 받더라도 최소한 36개 도시나 주요 목표를 핵탄두로 보복할 수 있는 2차 핵타격 능력을 갖춘 것이다.

전략핵을 운용하는 제2포병이 이번에 ‘히든카드’로 선보인 ‘창젠-10’과 ‘둥펑-21C’는 사거리 1500㎞ 이상, 오차범위 50m 이내로 ‘항공모함 킬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 미사일은 적 항공모함이 대만 동쪽 해상 1400㎞ 이내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통상 항공모함 탑재기의 작전반경은 1000㎞에 불과하다. 또한 대만의 특정 빌딩 특정 창문까지 타격이 가능한 1300기 이상의 초정밀 미사일은 대만 독립세력에 압박을 가하기에 충분하다. 이 미사일 시스템은 중국식 GPS 시스템인 북두(北斗)와 결합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초음속 크루즈 미사일 ‘창젠(長劍)-10’을 탑재한 트럭 16대가 천안문 사열대를 통과하고 있다. 미군의 ‘토마호크’ 대항마로 개발된 ‘창젠-10’은 사정거리 1500㎞, 오차범위 10m, 최대속도 마하 2.5의 성능을 자랑한다. 중국은 이미 ‘창젠-10’ 200기를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앙포토]

‘미사일 강국’ 뒤엔 첸쉐선 박사의 힘

이 같은 중국 미사일의 기술 발달에는 지난 10월 31일 타계한 첸쉐선(錢學森·1912~2009) 박사의 공이 컸다. 첸 박사는 1930년대 미국 MIT에서 항공공학 석사와 캘리포니아공대(Cal Tech)에서 항공·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제트추진체 분야의 세계적인 선구자였던 그는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955년 귀국해 미사일연구원 초대원장에 취임했다. 당시 마오쩌둥은 소련의 첨단무기기술 제공 제안에 대해 “비행기냐? 미사일이냐?”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이때 첸쉐선이 마오를 설득했다. 비행기 연구제조는 경험의 문제인데 서구와 소련은 이미 수십 년의 개발 경험을 갖고 있다. 중국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수십 년 내에 따라잡을 수 없다. 반면 미사일과 핵폭탄은 이론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이 오히려 쉬울 수 있으며 서방도 개발에 착수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중국이 노력한다면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마오는 이에 “양탄(兩彈, 원자탄과 수소폭탄) 위주, 미사일 우선”이란 지침을 내놨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데는 첸쉐선이란 석학과 마오의 전략적인 결정이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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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이어 중형전투기도 자체 생산 시작

중국은 면적 960만㎢의 대국이다. 주변의 전략적 지리환경이 복잡해 작전반경 1000㎞ 이상의 중형전투기는 필수다. 중국은 이번에 젠(殲)-11B전투기를 선보임으로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세계 세 번째로 중형전투기의 자체 연구제작과 생산이 가능함을 과시했다. 특히 올해 첫선을 보인 조기경보기 편대는 국토 방어에 치중하던 공군이 외향형 반격능력 강화에도 본격 착수했음을 잘 보여줬다.

인민해방군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하드웨어’의 증강을 자랑했다. 군사 퍼레이드로 실전 능력을 좌우하는 ‘소프트웨어’ 운용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계 2위의 군사 지출액으로 볼 때 러·영·독·일 등 전통적 군사 강국을 앞지르는 수퍼 파워로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서방에서 ‘중국위협론’이 높아질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대대적인 ‘힘자랑’을 한 노림수는 분명히 대내용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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