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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을 알면 월드컵 16강 보인다 <1> 오토 레하겔 그리스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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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적장을 알아야 16강이 보인다. 축구는 야구처럼 작전이 많은 종목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 작전타임을 할 수 있는 농구나 배구와도 다르다. 하프타임 때만 선수를 모아 작전 지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도 감독의 리더십과 전략이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팀 컬러가 180도 달라진다. 허정무 감독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등 상대국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짜겠다”고 말했다. 그 첫 걸음은 상대 감독의 전술과 스타일을 읽는 것이다. 3회에 걸쳐 B조 감독들을 집중 분석한다.

선수 땐 거칠기로 유명한 수비수였다. 선수보다는 감독으로 더 높은 명성을 쌓았다. 26년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감독으로 이름을 떨쳤고 2001년부터 그리스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다. ‘분데스리가의 아이’, ‘킹 오토’, ‘레하클레스(레하겔+헤라클레스)’ 등 별명도 많다. 악명 높은 독재자, 열정을 불어넣는 선동가, 푸근한 옆집 아저씨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오토 레하겔. 이 노회한 감독이 이끄는 그리스는 한국이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한국은 내년 6월 12일 그리스를 상대로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가장 현대적인 축구? 이기는 축구지”

독일 출신 레하겔 감독은 올해 71세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감독 가운데 최고령이다. 축구 비평가들은 나이만큼이나 그의 축구도 늙었다고 투덜댄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유행했던 리베로 시스템을 여전히 사랑한다. 단조로운 측면 공격에 이은 헤딩 공격은 레하겔 축구의 주요 공격 루트다.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재미없는 대회가 돼 버렸다. 그리스가 시대에 뒤떨어진 축구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수비 위주로 꽁꽁 문을 걸어 잠근 그리스는 빠른 역습을 통한 측면 돌파로 포르투갈·프랑스·체코 등 유럽의 거함들을 잇따라 쓰러뜨렸다. 포르투갈과 결승전에서는 단 한 개의 유효 슈팅을 골로 연결하며 1-0으로 승리해 우승컵을 품었다. 그리스는 ‘독일보다 더 독일다운 효율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레하겔 감독은 “이기는 축구가 가장 현대적인 축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토크라시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은 오토 레하겔의 팀 운영을 ‘오토크라시(Ottocracy)’라고 칭한다. 독재라는 뜻의 ‘오토크라시(Autocracy)’와 발음이 똑같은 것을 레하겔의 성격에 빗대 부르는 것이다. 레하겔 감독은 선수단뿐만 아니라 구단 구석구석까지 자신이 컨트롤하는 것을 즐긴다. 자신이 원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구단과 마찰을 빚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96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 보르도(프랑스)와 UEFA컵 결승전을 불과 나흘 앞두고는 당시 구단주였던 베켄바워와 갈등을 빚어 해고되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 구단에서 쫓겨난 그는 곧바로 2부 리그 카이저슬라우테른을 맡았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후 카이저슬라우테른은 1년 만에 1부로 승격했다. 98년에는 승격 첫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그는 26년 동안 독일에 있으면서 분데스리가 3회를 포함해 모두 여덟 번 우승을 만들었다.

그는 2001년 그리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 9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데 이어 유로2008에서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그리스축구협회는 레하겔의 ‘오토크라시’에 변치 않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레하겔은 다시 2010 남아공 월드컵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선수들 가슴에 불을 지른다

팀 운영에는 철권을 휘두르지만 그는 인간적인 매력도 풍부한 사람이다. 차두리(프라이부르크)는 그를 두고 “나를 부를 땐 언제든 ‘얘야, 얘야’라고 말하는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감독 시절 외국인 선수를 규정을 초과해 교체 투입한 후 허둥대는 모습은 요즘도 분데스리가의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줄 때마다 나오는 신이다. 이처럼 덜렁대는 면도 있지만 독일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인간적’이라며 좋아한다.

레하겔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들로 하여금 “저 감독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동기 부여 능력이다. 유로 2004에서는 33세의 노장이었던 테오도르 자고라키스가 중원을 누비며 팀을 지휘했다. 한물간 선수로 여겨졌던 자고라키스가 마지막 불꽃을 태운 덕분에 변방의 그리스가 유럽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이번에는 32세의 노장 카라구니스에게 주장 완장을 채웠다. 중앙 미드필드에는 신예보다 경험 많은 노장을 기용하는 게 레하겔 감독의 오랜 습관이다.

#레하겔 축구를 깰 비책은

레하겔 감독은 수비수를 발탁할 때 기술보다는 체격을 우선시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에서 활약하는 중앙 수비수 키르지아코스는 1m93㎝의 장신이다. 파파도폴로스도 1m88㎝다. 이들이 가담하는 세트피스는 위력적인 공격 루트가 된다. 골문 가까운 곳에서 헤딩을 막기 위해 한국 수비수들은 수적 우위와 좋은 위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스는 유럽 예선에서 10전6승2무2패를 기록했다. 10경기를 치르는 동안 21골을 터뜨렸고 오른쪽 공격수 게카스(레버쿠젠)는 그중 절반에 가까운 10골을 넣었다. 게카스를 중심으로 공격이 전개되는 방식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해준·최원창 기자

오토 레하겔은

■ 생년월일 : 1938년 8월 9일(71세) ■ 국적 : 독일 ■ 별명 : 오토 대제(King Otto)·레하클레스(레하겔과 그리스 신 헤라클레스의 합성어) ■ 지도자 경력 : 오펜바흐(74∼75년), 베르더 브레멘(76년·81∼95년), 도르트문트(76∼78년), 빌레펠트(78∼79년), 뒤셀도르프(79∼80년), 바이에른 뮌헨(95∼96년), 카이저 슬라우테른(96∼2000년·이상 독일), 그리스대표팀(2001년∼현재) ■ 주요 우승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회(92년), UEFA컵 1회(96년), 분데스리가 3회(88·93·98년), 독일컵 3회(80·91·94년), 유로 2004(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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