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대화정치를 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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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야가 영수회담을 통해 국민대통합의 정치니 대화.상생(相生)의 정치니 하는 거창한 수사(修辭)로 합의를 한 것까진 좋았는데 걱정은 이런 좋은 정치를 과연 말 그대로 실천해 나갈 의지나 능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껏 한번도 그런 정치를 해본 경험이 없으니 축적된 노하우가 있을 리 없고 그동안 연구나 준비해 둔 것도 없는 형편이다.

당장 영수회담 합의가 있은 며칠 만에 여야는 김성재(金聖在)청와대정책기획수석의 발언으로 한바탕 다투었다.

소수가 뭉치면 정의고 다수가 뭉치면 불의라는 그의 발언은 결국 "말조심하라" 는 대통령의 꾸지람을 들었지만 실은 표출된 그의 말보다는 그나 그가 속한 집단이 정말 그렇게 믿고 생각하고 있는지 여부가 더 문제일 것이다.

야당을 '불의의 표' 로 당선된 집단이라는 생각을 집권세력 일부에서라도 하고 있다면 대화고 상생이고 어려울 것은 뻔한 일이다. 金수석에게 야단을 친다면 "말조심하라" 는 것보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바꾸라" 고 야단을 치는 게 좋았을 것이다.

국회의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도 여야는 다투고 있고, 자민련 대접문제를 놓고도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여당은 교섭단체 미달인 자민련에 대해 특별히 대화와 상생정치를 하고 싶은 눈치고, 야당은 자민련과는 '상생'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여야는 말뜻도 잘 모른 채 국민대통합이니 대화니 상생이니 하는 말을 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따라서 정말 대화정치를 하겠다면 그걸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사항을 구체화.제도화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대화정치의 기본은 첫째 정보의 공유(共有)라고 본다.

여당은 알고 야당은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란 불가능하다. 중요 안보.외교사항은 야당 지도부에도 사전 통보.설명되는 것이 필요하고 야당은 철저한 기밀유지의 책임을 져야 한다.

중요 경제상황과 정책조치도 사전통보되고 야당 의견을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정보의 공유를 통해 집권측은 정책의 사전보완 기회와 정책추진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고, 야당측은 정책에 대한 영향력과 정보의 통로를 갖게 된다.

대화정치를 가능케하는 또 한가지 필수조건은 각자가 자기의견의 수정 용의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견은 부동(不動)으로 해놓고 상대방만 협력하라고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투항 강요요, 그게 바로 독선.독주다.

지금까지 많은 여야대화가 있었지만 제대로 안되고 결국 전면대결이나 날치기로 간 것도 바로 이런 투항강요식 대화였기 때문이다.

대화를 한다면 상대방의 주장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용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대화정치라고 해서 1백% 합의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이견이 있다는 데 합의' 하면 표결로 결판내는 것이 당연하다.

정치자원의 공유도 대화의 기본이다. 여당의 정치자금이 야당의 10배나 되는 상황에서는 대화나 상생정치가 되기 어렵다.

기업이 야당을 후원해도 뒤통수가 무사해야 하고 검찰권.인사권.국세청 등이 정치와 상관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비슷한 사건인데도 여당은 무사하고 야당은 혼이 난다면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이처럼 대화정치는 그 바탕이 될 몇가지 기본사항을 실천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여야 영수가 만나 "자, 이제부터 대화정치다" 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결코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실천의 몫이 집권측에 더 크게 있음은 물론이다. 집권측으로선 왜 귀찮게 중요사항을 야당에게 알려주고 의논하느냐고 할지 모르나 생각하면 야당보다 더 편리한(?) 존재도 없다.

가령, 이 복잡한 세상에서 정부가 정책을 어떻게 국민에게 일일이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야당의 지지를 얻을 때 정부는 손쉽게 정책에 대한 국민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정책에 대한 야당의 '손때' 를 귀찮아하기보다 오히려 환영해야 할 것이다.

야당 역시 대화정치로 나가야 국가경영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투쟁.대결로만 나간다면 필요한 정보나 최신자료는 없이 맨날 알맹이 없는 맹탕과 구문(舊聞)만 쥐게 되므로 시대에 낙오하기 십상이다.

여야는 영수회담을 통해 장대한(!) 합의문만 발표해놓고 가만 있을 게 아니라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구체적 방안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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