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풀린 학교 교육] 中.성적만능 입시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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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고교마다 중간고사가 한창인 28일 서울 C학원. 오후 5시30분이 되자 고교생 1백여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수학 내신 대비 강의시간이다.

"H고교에서는 지난해 이 문제가 나왔다. D고교 교사도 이 문제를 좋아하니 꼭 암기해야 한다.

" 수학 강사의 말에 학생들은 서울 시내 10여개 고교의 중간고사 기출 문제를 모은 문제집에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 표시를 하며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 K고의 金모(17)양은 "학원에 오면 3~4년간 기출 문제가 다 모여 있는데 학교에서 열심히 할 필요가 있겠느냐" 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S학원도 인근 25개 고교의 기출 문제를 분석한 책을 발간하고 국.영.수는 물론 과학.사회과목 내신 대비반을 운영하고 있다.

중.고교 교육이 전인교육이 아니라 '수험 기계' 를 요구하는 입시에 매달린 상황에서 학교는 이미 경쟁력을 잃은 상태다. 내신도 잘 받고 수능 성적도 좋아야 대학 가는 길이 안전한 '만점 지상주의' 가 여전한 실정에서 학원은 '날아가고' , 학교는 '기어가고' 있다.

◇ 학원으로 내모는 학교〓서울 B고교 수학 담당 金모(37)교사는 중간고사 문제 출제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낼 만한 문제가 아예 바닥났기 때문이다.

金교사는 "인근 학원들이 각 학교 시험 문제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고 말했다. 학원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학교 시험문제를 가져오는 학생에게 상품권을 지급하고 학교 교사의 출제경향과 교사 성향을 분석한다. 정일학원 윤정현(尹晶鉉.45)상담실장은 "학원은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고 말했다.

일산.분당 등 신도시 지역의 학원들은 요즘 주말엔 오전 3시까지 보충수업을 한다. 학교처럼 급식도 제공하며, 내신 대비에 한창이다.

200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내신성적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에 오전 1~3시에 학교처럼 '보충 자율학습' 까지 벌이고 있다.

서울 S고교의 嚴모(44)교사는 "교사들은 학생지도에다 각종 잔무에 시달려 수업준비가 충분하지 않지만 학원 강사들은 하루에 3~4시간씩 수업준비를 하고 있다" 며 "학생들이 학원 쪽에 몰리는 게 당연하다" 고 실토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의 교직만족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비례해 수업의 질도 저하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지난해 말 조사한 '학교 붕괴 실태' 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고교사 2백18명 중 '교직에 보람을 못느껴 그만 두고 싶다' 는 응답이 서울의 경우 78.2%에 이른다.

◇ 과외를 부르는 입시〓2000학년도 대입의 경우 대학의 수능시험 반영 평균 비율은 전체 전형 요소의 55.9%다. 학교생활기록부의 실질 반영비율도 12.93%로 과거에 비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무시험 전형이라는 2002학년도에서도 대학들은 수능의 경우 총점.영역별 성적.영역별 백분위 성적 등을 다단계로 따질 계획이다. 내신성적도 역시 석차 성적을 쓰겠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할 수 없어 수능과외에 내신과외까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결국 수험생에게 무시험 전형은 허울뿐이고 준비할 전형요소만 늘어난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들이 수능총점 대신 등급을 활용하고 1~2점 차이로 합격.불합격이 갈리지 않도록 심층 면접.다단계 전형을 권고하고 있지만 대학들은 '공정한 기준이 없다' 며 어려움만 말하고 있다" 고 밝혔다.

경기도 D고교 2학년 방모(17)군은 "2002학년도 대학입시가 어떻게 무시험 전형이냐" 며 "단 한번 실수로 대입을 망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학원.과외에 매달리고 있다" 고 말했다.

윤창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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