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과외 단속의 원초적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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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과외의 고삐가 풀리게 되자 '고액 과외' 가 새로운 문제로 부각됐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음성적으로 이뤄져온 학원강사 등의 '족집게식 고액 과외' 를 차단할 방법이 당장은 없기 때문이다. 입법 추진 시기가 올 9월 정기국회로 예상돼 법적 공백이 생겼다.

문용린(文龍鱗)교육부 장관은 헌재의 결정이 나자 "대체 입법이 되기 전까지(고액 과외 단속은)기다릴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8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러한 교육부의 느슨한 태도를 질책했다.

金대통령은 "고액 과외가 판치고, 과외에 참여하지 못한 저소득층에 부담을 주는데도 법이 마련된 이후에 (단속)하겠다는 것은 학부모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처사" 라고 성토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고액 과외를 막을 특단의 대책으로 ▶고액 과외교습자에 대한 탈세.세금 누락 조사▶과외 학생의 학부모에 대한 자금 추적 등을 제시했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학계.언론계.교육계 인사를 모아 초고속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 고액 과외의 범위와 한계부터 설정할 계획이다. 이를 기준으로 과외 금지 입법 전까지는 행정기관 등을 통한 단속으로 발등의 불을 끄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인 '고액' 의 기준도 모호하고, 그 기준을 법제화하는 데도 난관이 예상된다.

특히 공교육이 정상화해야 고액 과외를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다는 지적이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과외가 성행하는 데는 부실한 학교 교육이 배경인데도 뚜렷한 비전 없이 단속 위주의 처방만 내놓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文장관은 일단 "(고액의 기준은)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는 액수" 라며 "당장 다음주 중 고액의 기준을 정해 단속에 나서겠다" 고 말했다. 단속 방법은 종전처럼 시.도교육청의 학원담당을 통한 행정지도와 고액 과외 교습자 및 학부모에 대한 국세청 조사 의뢰 수순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같은 1백만원짜리 과외를 놓고도 누구에게는 고액이고, 누구에게는 고액이 아닐 수 있다" 며 곤혹스러워했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시.도별로 상한선이 책정된 학원 수강료 등을 참조할 방침이다. 그러나 물가 인상 등을 감안해 만들어진 상한선이 중학교 보습학원이나 고교 단과학원의 경우 한달(17.5시간 기준)에 5만4천원에 불과해 통념상 고액 과외로 인정할 만한 적정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원의 월 봉급액▶통계청의 4인 가족 표준 월소득 대비 기준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령 없는 단속' 으로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령 단속된다고 해도 당장 처벌할 기준이 없다. 단속에 적발된 고액 과외자 역시 고액 과외를 했다는 이유가 아니라 탈세.소득신고 누락 등에 의해 제재조치를 받게 되므로 반발이 예상된다.

시.도교육청을 통한 단속 역시 올들어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전국적으로 단 한건도 없었다.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학원 담당 직원 한명이 보습학원.입시학원 7백여개 이상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강남교육청 관계자는 "고액 과외는 등록된 학원보다 학원 밖에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인데 어떻게 단속하겠느냐" 고 말했다.

교육부는 개인이나 그룹형 과외 교습자에 대해 등록 또는 신고받는 제도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고액 과외 교습을 하려는 사람이 등록.신고할 리 만무한 사정이고 보면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원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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