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 지금 변화중] 4. 서해안시대를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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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함박눈이 내리던 지난 2월 3일 남포시 항구동.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장은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착공식 현장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15년 안에 '세계에서 자동차 잘 만드는 나라 하면 공화국' 이란 말을 듣도록 하겠다. "

그는 "자신있다" 는 말을 덧붙였다. 남북 합작 자동차 생산의 길을 연 이날 행사는 두 측면에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91년 김일성(金日成)주석이 평양을 방문한 문선명(文鮮明)세계평화연합 총재에게 자동차를 생산해 달라고 요청, 합의했던 사업이 이제서야 첫 삽을 뜨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남포에 대규모 공장을 세워 서해안시대를 열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평양에서 불과 32㎞밖에 떨어지지 않은 남포 공장에 자본주의 경영방식이 도입된다는 것은 이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단순 임가공사업을 해온 대우의 남포공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평화자동차(사장 박상권)와 북측 구상에 따르면 남포의 1백만평 부지에 3억달러의 자금과 기술.인력을 투입해 공장을 세운다.

이탈리아 피아트 모델을 조립 생산해 일부는 내수용으로 하고 일부는 중국 등지에 수출할 예정이다.자동차산업은 각종 연관 부품산업으로 인해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이 공장은 북한 경제에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金正日)총비서는 지난 1월 25~28일 평북 공업부문을 현지 지도하면서 중국.러시아 시장을 겨냥한 수출기지를 신의주에 건설하도록 지시했다. 며칠 뒤인 1월 30일자 노동신문은 金총비서가 김평해 평북도당 책임비서로부터 남(南)신의주 공단 건설계획을 브리핑받는 사진 한장을 실었다.

신의주 공단 건설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남측 기업의 투자유치 희망을 시사한 것이다.

경협 일선의 북측 관계자들은 해주.개성 공단을 요청하는 현대.삼성그룹 관계자들에게 "金총비서께서 신의주에 서해안 공단.전자공단을 앉히려 한다" 고 밝히면서 '신의주 구상' 을 흘려왔다.

金총비서가 경의선 철도 복선화 지시를 내렸다고 언급, 수송망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큰 관심이 있음도 드러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태섭(李泰燮)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金총비서가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공장을 신의주시 중심부에서 5㎞ 떨어진 남신의주로 이전시킬 것을 지시했다" 며 "이때 '신의주 구상' 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고 전했다. 11월 7일 공장 착공식에는 곽범기 부총리 등 내각 경제관료들이 대거 참석했다.

서해안 지역에 2천만평 규모의 공단을 조성하기로 북측과 합의한 현대그룹의 공단부지가 어디로 확정될지 현재 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북측이 신의주 공단에 강한 집착을 보이자 해주 공단과는 별도로 신의주에 1백만평의 경공업단지를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단이 어느 쪽으로 결론나든 서해안에 대규모 수출공단이 들어설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이에 따라 도로.철도.항만.전력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이 당면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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