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의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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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초(焦). " 지난 21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지사는 취임 1주년을 초조하다는 한 글자로 회고했다.

"현실은 점점 나빠지는데 일은 빨리 안된다" 는 것이다.

그의 도정 1년은 지사선거 때의 기치 그대로 'No라고 할 수 있는 도쿄(東京)' 였다. 자치단체 수장이면서도 국정과 외교 영역도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의회를 제쳐두고 국민에게 정책을 직접 호소하고 지지를 모았다. 잦은 TV 출연과 자극적인 발언이 수단이었다.

도민들은 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장기 불황 속에서 정치인들의 '화(和)의 정치' 에 신물난 주민들은 불안의 탈출구를 그의 리더십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선동 정치' '대중영합주의' 라는 비판도 나왔고, 심지어 그를 전제군주나 아돌프 히틀러에 빗댄 이들도 있다.

지난 2월 은행의 자산규모를 과표로 하는 새 세제안은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조세 형평성 문제 외에 은행 신용도를 더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이시하라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발표 후 두달도 안돼 도의회에서 이를 승인하는 조례안이 통과됐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도쿄도는 이 조치로 연간 1천1백억엔을 더 거둬들이게 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은행에 곱지 않은 서민감정을 십분 활용했다.

"지금 은행의 적(敵)은 이시하라" 라고도 했다. 핵심 참모들과만 상의하고 내각엔 귀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각이 제동을 걸지도 못했다. 총선을 앞두고 인기 상종가인 이시하라와 맞붙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새 세제는 '신타로세(稅)' 로도 불린다.

같은 달 나온 디젤차량 규제안도 튀기는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배기가스 정화장치를 달지 않은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단속 기관이나 경비에 대한 복안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상황은 금세 바뀌었다. TV 출연과 강연 때마다 배기가스 검댕이 든 플라스틱통을 들고 나와 "이것이 몸 속으로 들어간다" 고 호소한 것이 먹혀들었다. 반발하던 자동차공업회.석유연맹은 몸을 낮췄고 운수성.환경청도 대책모임을 만들었다.

튀는 언동으로 주민의 관심을 모아 일을 추진하는 수법은 대학교수 출신의 미노베 료키치(美濃部亮吉)전 지사와 빼닮았다는 평이다. 이시하라가 25년 전 도지사 선거에서 자신에게 유일한 선거 패배를 안겨준 혁신계 미노베의 스타일을 따르는 것은 아이러니다.

국수주의도 한껏 부추겼다. 한국.중국인을 차별하는 '3국인' 발언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에는 도전장을 던졌다. 도내 요코다(橫田) 미군비행장의 반환을 추진 중이다. 미국의 세계 지배에 맞서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주장한 공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을 정책으로 옮기는 작업 같기도 하다.

중국 비판은 도를 넘어섰다. 취임 초 중국을 지나(支那)로 불러 심기를 건드리더니 지난해 말에는 대만을 방문했다. 최근엔 독일 슈피겔지(誌)와 회견하면서 "중국은 더 분열돼야 한다" 고 말했다.

반중국.친대만 입장에는 외무성도 골머리를 싸맨다.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 정책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형 보수신당 창당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 차기 총선 출마 후보자들은 그와 사진을 찍으려고 난리다. 그의 정치세력화는 주변국과의 관계에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시하라의 반란에 열광하는 일본 여론의 실체는 무엇일까.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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