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 지금 변화중] 1. 어떤 변화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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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의 눈' 은 경제다.

북의 통치자 김정일(金正日) 당 총비서가 남북 정상회담에 호응해온 데서도 경제재건을 위한 '실리(實利)' 추구가 그들에게 사활적 문제임을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지금 내부 정치 안정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경제재건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하다.

북한 당국이 '살아남기' 에서 '잘 살아보세' 로 정책을 전환하는 과정은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운명에 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역사적 전환기에 북한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집중 추적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지난 1월 25~28일 신의주를 방문했다.

평북 소재 공장.기업소를 직접 지도하면서 각종 경제과업을 특별 지시하는 등 분주하게 산업현장을 독려했다.

아주 '상징적인' 방문이었다. 연이은 군부대 방문을 통해 군총사령관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경제총사령관' 으로서의 연성이미지로 탈바꿈하려는 모습이 큰 변화로 잡힌다.

1998년 9월 헌법 개정에 따라 국방위원장에 재취임한 그는 '강성대국' '제2천리마운동' 의 깃발 아래 경제재건에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자 노동신문(당기관지)은 김일성(金日成)주석의 생일맞이 사설을 실었다.

제목은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자' . 경제재건에 매진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金주석 사후인 95년에 '김일성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 , 97년에 '김일성의 전사답게 억세게 싸워나가자' 라고 한 것과는 판이하다.

평양 당국이 올해 경제재건에 본격 착수한 것은 지난해 4억달러가 넘는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에 힘입어 10년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강성대국' 구호가 60년대 한국 사회에 풍미한 '싸우면서 건설하자' 와 흡사하며 '제2천리마운동' 은 새마을운동과 닮았다고 지적한다.

북한 당국이 '자력갱생'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당.국가 지도부의 머리 속에 외자유치 및 수출 확대를 성공시키려는 '개발독재' 청사진이 입력돼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행 북한경제팀 박석삼(朴石三)연구위원은 대규모 기업집단인 연합기업소체계 해체, 과학기술 개발, 외국인투자관련 법규 개정, 수출활성화정책 등이 '김정일식 경제개혁' 의 요체라고 설명한다.

북한은 '개혁.개방은 곧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 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개혁.개방을 한사코 피하면서도 '경제사업 개선' 을 강조함으로써 변화의 숨통을 트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 연합기업소를 해체.조정하고 기업경영을 효율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金총비서가 1월 신의주 방문 때 공장.기업소 운영의 '개선' 을 특별 지시함에 따라 산업현장의 실용주의는 더 힘을 얻게 됐다.

경제사업에서 '실리' 가 강조되고 간부들의 '실력' 향상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도처에서 진행되는 등 실적주의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농업에선 농민에게 작물선택 권한을 부여하고 벼.옥수수 농사에만 매달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감자농사.이모작에 열성을 보인다.

강원도와 평안북도에서 대대적인 토지정리가 끝나고 황해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평양~남포 고속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건설현장의 열기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동해안의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가 난관을 거듭하자 서해안쪽으로 눈을 돌려 신의주.남포 등을 경제특구로 지정할 조짐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되는가 하면 교육분야에서 해외교류 확대책이 모색되는 등 변화의 물결은 광범위하다.

金총비서의 관심 속에 인터넷.컴퓨터 바람도 일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남북간에는 금강산관광 확대, 서해안 남북 합작공단, 인터넷을 통한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전자상거래 등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가시화하고 있다.

변화는 대외관계에서 더 쉽게 감지된다.

지난 1월 이탈리아와 전격적인 외교 수립에 합의한 평양은 베이징(정상회담 협의중).워싱턴(고위급인사 방미).도쿄(수교협상)와의 관계에 외교력을 집중하는 한편, 아태지역 및 유럽연합(EU) 국가로 외교반경을 넓히고 있다.

북한 외교일꾼들이 "올해 안에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 것" 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하고 다닐 정도다.

남북대화.대외개방의 길목에 서있는 북한은 지금 변화의 폭과 속도를 고민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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