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소장파 의원 만찬회동 취소 해프닝

중앙일보

입력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3일 비공개로 만찬회동을 열려다가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당초 이날 한나라당 남경필ㆍ원희룡ㆍ정진석ㆍ정두언ㆍ권영세ㆍ김정권 의원과 저녁식사를 함께 할 예정이었다. 장소는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서울 삼청동의 대통령 안가(安家)로 예정돼있었다.

만찬에 초대됐던 이들 의원은 모두 재선 이상이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 비교적 선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소장ㆍ개혁파에 속한다. 이런 만큼 이 대통령은 이들과 세종시 원안 수정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여당 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예정이었다.

특히 충남 출신으로 16·17대 국회 때 연기군이 지역구였던 정진석 의원이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어떤 의견을 낼지는 청와대 내부적으로도 관심사였다. 또 서울시 부시장 출신으로 경선ㆍ대선 때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의원이 이 대통령을 만나는 것도 모처럼만의 일이라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날 만찬은 한 라디오 방송사가 인터넷판에 만찬 사실을 담은 뉴스를 올리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이 방송사의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남경필 의원도 진행자가 “이 대통령 오늘 청와대로 초대를 하셨죠?”라고 묻자 얼떨결에 “지난 주말에 연락을 받았다. 저녁식사를 함께 할 것”이라고 공식 확인을 해버렸다.

이처럼 대통령의 비공개 일정이 공개되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비공개 일정의 공개 자체가 금기시되는 데다 장소가 청와대 바깥인 만큼 경호상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 정무라인은 만찬 계획이 알려진 지 몇 시간 만에 일단 만찬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연기라고는 하지만, 대통령 일정 조정이 쉽지 않아 새로운 날짜를 잡지 못한 만큼 사실상 취소가 된 셈이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비공개 일정에 대해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오늘 저녁 대통령의 만찬 일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없다'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일이 이렇게 꼬이자 해당 의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의원은 “도대체 대통령 비공개 일정이 어떻게 새나갈 수가 있느냐”며 “비공개 일정이 공개되면 취소되는 특성을 잘 아는 누군가가 흘린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의원도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일정표에도 ‘가족행사’라고만 써놓았을 정도로 조심했었는데 만찬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만찬 자체를 취소한 게 청와대의 과잉대응이라는 목소리도 여권 내에서 나왔다. 한 관계자는 “장소를 청와대로 옮기고, 모두발언 정도는 공개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소통을 하겠다고 만든 자리를, 언론에 공개됐다고 아예 없앨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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