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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등 70년대 이전무대 시대극 눈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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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검정 교복이 브라운관에서 제철을 만났다.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KBS2 주말연속극 '꼭지' 를 필두로 KBS2 아침드라마 '송화' , KBS1 'TV소설-민들레' , 이번 주 시작하는 SBS 주말연속극 '덕이' 등 각 방송사가 약속이나 한듯 1970년대 이전을 무대로 한 시대극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SBS '은실이' 와 MBC '국희' 를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아역 화자(話者) 혹은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이들 드라마 제목만으로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꼭지' 는 아들 삼형제를 둔 집안의 가족사에, '송화' 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주인공이 거짓도 마다않고 영화배우가 되는 성공담에, 'TV소설-민들레' 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의 갈등에, '덕이' 는 빨치산의 딸로 태어나 정미소집에서 자라난 여주인공의 강인한 삶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어려웠던 그 시절' 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구세대에게는 향수를, 신세대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품과 에피소드,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갈등과 화해가 엇갈리는 가족사의 변천, 어려운 형편을 이겨낸 인물들의 성공담은 이들 시대극의 공통요소로 꼽힌다.

'은실이' 와 '국희' , 더 거슬러 올라가 '육남매' 나 '옥이이모' 의 예에서 보듯 아역 주인공의 천진한 연기까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꼭지' 는 '은실이' 처럼 외가에서 자라는 아홉살 소녀 '꼭지' (김희정)가 화자로 등장하고, '덕이' 는 '국희' 처럼 두 여주인공 '귀덕이' (김현주) '귀진이' (강성연) 역할을 초반 20회 분량에서는 두 아역배우 신지수.이정윤에게 맡길 예정이다.

이같은 시대극은 흔히 삼각관계.불륜을 거듭하는 애정 소재 현대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대극 붐을 주도하고 있는 KBS의 최상식 드라마국장은 "KBS1의 'TV소설' 은 본래 '당신' '누나의 얼굴' 등 어려운 시대를 이겨온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는 기획의도로 출발한 것인데 공교롭게 KBS2의 아침드라마도 시대극이 기획되었다" 면서 "시청률을 좇기보다는 남녀관계의 갈등에서 벗어난 소재로 건전성.건강성을 우선하자는 것이 현재 KBS의 드라마 제작방향" 이라고 설명했다.

'IMF형 드라마' 로 꼽히는 '육남매' 를 비롯해, 지난해 기자들이 드라마부문 최고의 프로그램 1, 2위로 뽑은 '국희' 와 '은실이' 는 이들 시대극의 대표적인 성공모델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시대를 고증할 자료가 오히려 사극보다 부족하다" 면서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단역 출연자라도 머리카락 색깔이 튄다 싶으면 시청자들은 "그 시절에 무슨 염색이냐" 며 매서운 지적을 방송사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

시청자들의 반응 속에서는 시대극에 대한 우려도 읽힌다.

한 시청자는 '꼭지' 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내가 장가가서 며느리 데려오면 엄마 마음대로 부려먹으라' 는 극중 대사에 대해 "21세기에도 며느리는 시집간 집안의 일꾼인가" 라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드라마" 라고 비판했다.

아들의 담임교사에게 줄 선물은 챙기면서 딸의 수업료는 번번이 미루는 어머니( '민들레' )'나 친딸과 달리 주워온 딸을 '콩쥐팥쥐' 에서처럼 구박하는 가족들( '덕이' )은'도 '그 시절' 과 눈높이가 다른 요즘 시청자들에게는 자칫 드라마 자체에 대한 미움을 낳을 요소다.

처첩간의 갈등( '꼭지' ), 기생의 딸이라는 출생의 질곡( '민들레' ), 폭력배의 성폭행( '민들레' )등 시대극의 여주인공 앞에 놓인 기구한 운명을 이들 드라마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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