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기업 규모 따라 단계 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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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이 무산된 것은 두 제도 시행 방안을 놓고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한국경총과 한국노총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해서는 양측이 3년 정도 유예하는 것에 의견 접근을 했다. 그러나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딴판이다. 경총은 내년에 즉시 시행, 한국노총은 복수노조처럼 3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에 대해서도 경총은 다수대표제를, 한국노총은 자율교섭을 내세우고 있다. 노동부도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제도 중 어느 하나라도 유예하는 쪽으로 노사가 합의하는 것은 담합 행위”라며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자 노동부는 이날 중재안을 냈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제도를 내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이다. 내년에는 종업원 1만 명 이상 대기업과 공기업에 적용하고, 이어 6개월 단위로 5000명·1000명·500명·300명 이상 사업장 등에 적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6개월씩의 준비 기간을 노사에 주게 된다. 중소기업의 노조가 많은 한국노총으로선 2~3년간의 준비 기간을 벌게 된다. 한국노총이 주장하는 3년 유예안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준비 기간 동안 정부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제도에 대한 계도 활동을 펴면서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 시행한다는 정부 방침에 변화가 없다”며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을 반영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단계별 시행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가 받을 수 없는 안을 한국노총과 합의해 내놓기는 힘든 것 아니냐”며 “검토가 가능한 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중재안을 내놓음에 따라 노사정 논의의 향배가 주목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4일 열려 8일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 동안에 노사정이 합의하면 환노위에서 합의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 형태로 상정할 수 있다. 올해 안에 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나라당은 3일 의원총회를 열어 당의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당의 입장은 정부와 다를 수 있다”며 “(정부를) 도와줄 땐 도와주지만 우리 입장대로 나갈 땐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총 고위 관계자는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은 이 소식을 듣고 2일 노사정 협상장에 나오지 않고 한나라당 의원 설득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협상을 무산시킨 모양새다.

노사정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현행 법대로 시행된다. 이는 노사정 모두에 부담이다. 기업과 노조는 또 다른 노조의 출현과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중단에 따른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혼란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노총은 지난달 30일 장석춘 위원장의 기자회견 직후 배정근 공공 부문 위원장이 장 위원장과 다투는 등 반발이 거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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