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 9명 합격! 전문계고 ‘유쾌한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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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울생활과학고 황정숙 교장(앞줄 가운데)과 교사들이 2일 학교 교정에서 미국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을 축하하며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강정현 기자]

황정숙(68·여) 서서울생활과학고 교장은 한 달에 한 번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화상채팅을 한다. 디지털 문화에 낯설지만 미국에 유학 간 제자들이 걱정이 돼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인다. 현재 이 학교 출신 15명은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 궁동에 있는 서서울생활과학고는 전문계 고교로 1450여 명이 재학 중이다. 국제뷰티아트과·국제조리과학과 등 8개 전공과목이 있다. 1972년 전수학교로 개교해 상고·정보화산업고를 거쳐 2003년 전문계고가 됐다.

황 교장은 “전문계고 학생들이 유학을 꿈꾸지 않는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다”며 “사회에서는 조리나 미용 등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계고교로는 드물게 올해 유타대·미시간주립대 등 미국 대학에 3학년생 9명을 합격시켰다. 2006년 유학반을 만든 이후 2007년과 2008년에도 각각 7명과 8명을 미국에 유학보냈다.

77년 이 학교에 영어 평교사로 부임한 황 교장은 제자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기술뿐 아니라 글로벌 의식을 갖춘 인재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2006년 교장이 되자 영어교사 3명과 원어민 교사 1명으로 유학반 전담팀을 꾸렸다. 전문계 고교라는 선입견을 아이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어 미국 유학을 생각하는 학생은 거의 없던 시기였다.

‘일단 해보자’고 밀어붙이는 황 교장의 의지로 유학반 문이 열렸고 12명의 아이가 찾아왔다. 매일 방과후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영어 몰입교육을 밀어붙였다. 황 교장은 각종 유학원 사이트와 미국 대학 사이트도 수시로 뒤졌다. “유학을 보낼 정도로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에 저렴한 학비가 중요했지요.” 그렇게 네바다 주립대·피츠버그 주립대 등 학비가 비싸지 않은 10여 개 대학을 추려냈다.

중도 포기하려는 학생들을 붙잡고 다독이느라 황 교장도 퇴근을 늦추기가 일쑤였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주어진 공부 목표량을 모두 마칠 때까지 곁에서 지도했다. 김송이(18·여·피츠버그주립대 합격)양은 “해 뜨기 전 등교해 별 뜰 때 집에 갔다”고 털어놨다. 방과후 영어 몰입교육에 드는 비용은 한 달에 40만원. 노고은(18·여·캔자스주립대 합격)양은 “일반 사교육을 받았다면 100만원이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2007년 첫 합격생을 내자 처음에는 ‘웬 유학이냐’고 부정적이던 학부모들과 학생들도 마음을 열었다. 유타대·네바다주립대 등 4곳에 동시 합격한 전주희(18·여·유타대 합격)양은 “교장 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해 연간 2000만원이 넘는 유학을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월 출국을 앞둔 9명의 학생은 호텔 매니저·세계적인 요리사·재무관리사를 꿈꾸고 있다. 

임주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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