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맞수] 서울 서대문갑 이성헌·우상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난 13일의 투표는 후보들의 당락을 갈랐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가 손잡고 서로를 위로.축하할 때 승패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민주당 서대문갑 지구당사무실. 한나라당 이성헌(李性憲.42)당선자가 자신과 경쟁해 1천여표 차로 아쉽게 낙선한 학생운동권 후배 우상호(禹相虎.38.민주)후보를 찾아갔다. 이날 만남은 승패가 확정된 직후 양측이 서로 연락해 이뤄졌다.

禹씨는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李씨에게 건네주며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형님을 쫓아가긴 역부족이었던 것 같아요" 라고 축하인사를 건넸다.

李씨는 "선거판에 뛰어든 지 한달 반 만에 이런 득표를 하다니 정말 대단해. 난 진땀이 났어" 라고 답례했다. 李씨는 3만4천6백23표, 禹씨는 3만3천2백59표를 얻었다.

이 선거구의 운동 방식은 여느 선거판과 달랐다. 상호비방과 흑색선전.금품살포 등의 구태가 적었다. 젊은 후보답게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李씨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다져온 인맥을 중심으로 일꾼 이미지를 심기에 충실했고, 禹씨는 386세대의 신선함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승부를 걸었다.

두 사람은 연세대 81학번 동기. 그러나 나이는 군입대와 사회생활을 한 탓에 뒤늦게 입학한 李씨가 4살 많다. 禹씨는 사석에선 李씨를 형이나 선배라고 부른다.

李씨는 전두환(全斗煥)정권 시절인 1983년 교내 학도호국단장을 맡았고 이듬해 총학생회를 부활시키는 산파역을 했다.

禹씨는 87년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초대 부의장 등을 거치며 6.10항쟁을 주도했다.

정작 이들은 87년 최루탄 파편에 맞아 숨진 같은 학교 李한열군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민추협 간사였던 李씨는 "순수하고 강렬한 상호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고 당시를 술회했다. 이후에도 이들은 연세대 총학생회 출신 모임을 통해 교분을 쌓아왔다. 다만 李씨가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정무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제도권에 있었던 반면 禹씨는 전국연합 부대변인 등 재야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 禹씨가 민주당에 입당, 연세대가 위치한 이 지구당을 맡으면서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결전을 벌이게 됐다.

두 사람은 후회없는 경쟁이었기에 결과에 대해서도 깨끗이 승복했다. 앞으로 정치 개혁을 위해 더욱 힘을 합치기로 다짐했다.

李당선자는 "초선의원으로 당내 민주화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약속했다. 禹씨도 "비록 원외지만 낡은 지구당 정치문화를 고쳐 나가는 데 李선배와 협력할 것" 이라고 李당선자의 두손을 굳게 잡았다.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