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선운동 성공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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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13 총선의 최대 승자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다. 총선연대가 낙선 대상으로 지목한 86명 중 59명이 떨어졌고 그중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집중 낙선대상자 22명 중에서는 15명이나 떨어졌다.

총선연대측은 겸손하게 성공률이 70% 정도라고 낮춰 말했지만 지역감정이 강하게 나타난 영.호남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1백% 성공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엔 물론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총선연대측이 낙선운동을 효과적으로 이끈 역량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낙선대상자 선정 기준에서 상당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 정치적 음모론의 시비 속에서도 시민들의 광범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낙선운동 과정에서도 후보측의 폭력적인 방해에 무저항.비폭력 원칙을 고수한 점, 전략적인 대상자를 선정해 운동의 힘을 효과적으로 집중한 점 등을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총선연대측이 자체 분석했듯이 낙선운동은 대상자들의 부패와 반민주적인 경력 등 네거티브한 자료만 공개하게 됐다.

이로써 선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해 결국 젊은 유권자들의 대량 기권을 조장하는 결과가 돼 버린 점이나 지역감정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한 한계 등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점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낙선운동이 정치에 미친 영향이 결코 평가절하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각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의정활동이나 공천자 선정 등에 있어 낙선운동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것만 해도 이미 엄청난 정치개혁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앞으로도 이번처럼 '탈법적' 방식의 낙선운동을 할 수는 없다. 시민 정치개혁 운동이 '합법적' 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미리 마련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선거법 개정운동이다. 총선연대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이 절실하게 느꼈을테지만 현행 선거법은 지나치게 규제적이고 원내 정당에 유리하게 돼 있다.

선거운동이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도 공평하게 허용돼야 하며 동시에 시민단체들도 자유롭게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고쳐야 한다.

지자체 선거가 2년 앞으로 다가와 있으니 선거법을 서둘러 고쳐야 한다. 또 정치자금법과 반부패법을 개정 또는 제정해야 한다.

엄청난 돈을 받고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심판받지 않는 현행 제도를 고치지 않고서는 금권정치의 풍토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운동의 효과와 절박함으로 인해 총선연대로 결집됐지만 앞으로의 시민운동은 각자 그들의 전문분야를 발판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개혁운동이 돼야 할 것이다. 낙선운동뿐 아니라 공명선거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 등 다양한 형태의 시민운동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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