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신경전] 이총재 다음 전략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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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당선자.낙선자에 대한 축하 및 위로전화로 밤을 꼬박 새운 뒤 14일 오전 8시30분 당사에 나왔다. 당직자들과는 "사람잡는 TV 출구조사더구먼" 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그런 뒤 자축 기자회견, 국립묘지 참배, 동해.삼척 산불현장 방문 등의 '민생 이미지 과시용' 일정을 소화했다.

李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여야는 서로 협력해 하루 빨리 민생으로 달려가야 한다" 며 "김대중 대통령이 큰 정치를 편다면 흔쾌히 협조하겠다" 고 약속했다. 그동안 부정적이었던 여야 총재회담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날 것" 이라고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총선 전에 비해 한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李총재의 이같은 여유는 새롭게 짜인 양당구도에서 한 축을 자신이 차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오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이제는 화.전(和.戰) 어느 쪽이든 3자의 개입을 차단하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李총재의 이날 회견은 金대통령을 향한 화해의 메시지다.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李총재로서는 金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집착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金대통령에 대한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李총재의 측근은 "언론 문건.파업 유도.고위 공직자 부정비리 등 15대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간 각종 의혹사건은 모두 덮고 새로운 세기를 열자는 상생(相生)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고 전했다.

그러면서 李총재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金대통령이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며 "야당 파괴 시도는 국민의 뜻을 배반하는 것" 이라고 못박았다. "선거법 위반 문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면 곤란하다" 는 입장도 분명하게 밝혔다.

李총재의 측근은 "인위적 정계개편으로 자신(李총재)의 대선 가도를 방해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 해석했다.

양당구도에서 여권에 대한 한나라당의 수적 우위(1백33석 대 1백15석)라는 '기득권' 을 지켜내는 일은 李총재에게 당내외의 도전 차단을 위해 매우 긴요하다.

그러고 보면 李총재의 대여(對與)화해 제스처는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 는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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