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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 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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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직경 3㎞의 검은 구름 아래는 양강도였다. 인공위성으로도 잘 파악되지 않는 어두운 지상이다. 아니, 어두운 것은 양강도의 지리가 아니었다. 한반도 북쪽의 인간 체제다.

북한은 불투명 공화국이다. 은폐의 체제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체제를 우화로 묘사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거기서 은폐의 기원과 구조를 발견한다. 농장 주인을 반란으로 쫓아낸 돼지와 말, 양과 닭들은 인간의 착취가 없는 자유와 해방의 동물 세상을 만들었다. 평등한 세상에도 권력은 있게 마련이다. 지도급 계층인 돼지 집단은 처음엔 선한 권력이었다. 동물들은 그들의 선의를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돼지 집단 내부에서 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놓고 벌인 정책 싸움이었다. 잦은 노선 싸움은 1인자 권력다툼으로 발전한다. 선전선동에 능한 돼지는 폭력수단을 장악한 돼지에 패해 인간 세계로 쫓겨 간다.

1인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은 세뇌와 공포다. 인간의 착취에서 동물을 구원한 주인공이 1인자였다고 끊임없이 해대는 선전과 심리전은 세뇌였다. 여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회의파에게 호위병인 맹견들을 풀어 물어뜯게 하는 것은 공포였다.

천재지변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해도 인간들과 배반한 돼지의 더러운 음모 탓이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꾸며댔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은 적개심으로 하나가 됐다. 농장의 동물들에겐 혹독한 노동과 지금이 행복하다고 믿는 자유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은폐는 거짓과 폭력으로 권력을 운영하는 1인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도전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생기자 그는 금단의 장소였던 옛 농장주인의 집에 은신한다. 동물들은 아주 가끔씩만 모습을 드러내는 1인자 돼지를 신비로움과 두려움으로 바라봤다. 권력자는 은둔처에서 인간의 술과 침대를 즐겼다. 인간들과 은밀한 거래도 했다. 동물농장은 어둡고 음산한 은폐 사회가 됐다. 거짓과 폭력은 은폐 권력을 낳고 은폐 권력은 은폐 체제를 낳았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4년 전 자신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통령님께서 나를 은둔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은둔자다. 북한 체제의 은폐성은 그의 은둔성에서 나온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