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질적인 평화체제 구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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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오는 6월 평양으로 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 후 꾸준히 추진해 온 햇볕정책의 중요한 결실로 7.4 남북 공동성명이 남북간 대화의 물꼬를 튼 역사적 전기였다면, 남북 정상회담은 실질적인 남북간 평화구조를 정착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으로서도 남북관계 정상화 없이 국제사회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으며, 특히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지원에 김대중 정부만큼의 파트너가 없다는 점을 이해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동북아 긴장완화를 바라는 미국과 중국 등 주변 당사국들이 남북 고위 책임자간의 직접 대화를 적극적으로 권했고 남한에 등을 돌려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북한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준비과정에서부터 순조롭게 진행돼 반드시 성사되도록 양측이 인내와 정성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특히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한간의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평화구조를 정착하는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회담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몇차례 총리급 고위회담을 했고 숱한 당국자간 회담도 있었다. 1992년에는 남북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 등에 관한 남북 기본합의서까지 조인됐었다.

그러나 그 합의는 합의에 그친 채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가지 못했다.

양측은 최소한 이때 합의한 연락사무소 설치와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가시화함으로써 남북문제를 당사자끼리 협의할 공식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상시 통로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러한 제도적 창구가 상시화해야 미사일.핵무기 개발 등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협의할 체제를 갖추게 되고 이를 기초로 남북간 평화체제 등 장기적인 문제도 협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천만 이산가족의 고통을 생각해 인도적 교류와 왕래 등 이산가족 문제를 정상회담의 자연스러운 의제로 채택해야 할 것이다.

북측으로선 여러 어려운 입장을 제기하겠지만 이 문제를 피하고선 어떤 의제에도 합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해결을 위한 양측의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남북간 화해는 결국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이다. 金대통령은 이미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의 도로.항만 건설과 농업 기반시설 등에 대해 지원할 의사를 밝혔다.

북한의 산업 기반건설에는 막대한 규모의 경협 자금이 소요될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의 폭넓은 합의를 바탕으로 지원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특히 민간 기업들의 자유로운 투자환경을 보장해 주는 조치들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북측의 신뢰할 만한 여러 제도적 틀이 선행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단발성 회담은 자칫 정치적인 쇼로 그칠 수도 있다. 평양 회담의 성공적인 결실과 뒤를 이은 서울 회담으로 상례적인 정상회담의 길이 트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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