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로 2000여명 피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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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대형 산불이 휩쓴 강릉시 사천면 일대에서는 7일 오후 황급히 '피난' 하는 주민들로 '엑소더스' 행렬이 벌어졌다.

재해대책반의 대피령에 따라 가까운 마을회관이나 인근 친척집 등으로 피신했던 주민들은 모두 5백21가구 2천30명. 강릉~속초간 7번 국도에서 사천면으로 들어가는 샛길은 인근 지역으로 대피하는 승용차와 트럭이 줄을 이었다. 경운기 등에 보따리를 싣고 이동하는 노인들이나 소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은 전쟁 때의 피난민 대열을 방불케 했다.

주민 金성호(47)씨는 "황급하게 짐을 싸는 바람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귀중품과 옷가지, 간단한 살림도구만 챙겼다" 고 했다. 그는 "사천면에서는 마을회관으로 피하라고 했지만 아예 주문진에 있는 동생 집에 아이들과 짐을 맡겨놓고 다시 와 산불 진화를 도울 생각" 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주민들은 인가쪽 불길이 잡히면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으나 언제 또다시 산불이 살아나 닥칠지 몰라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강릉 경포해수욕장과 오죽헌 인근 인가 밀집 지역인 경포동 일대 주민 6천2백명도 이날 낮 "긴급대피하라" 는 당국의 지시를 받고 큰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피신하고 일부는 경황없이 집 떠날 준비를 하던 중 해안 불길이 잡혔다는 소식과 함께 대피령이 해제돼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포동 주민 林모(75)씨는 "대피령이 내려졌을 때 차도 없고 짐 쌀 일이 막막해 동해시에 있는 아들에게 급히 연락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며 "전쟁난 것과 다름 없었다" 고 손을 내저었다.

졸지에 집을 잃은 이재민 80가구 2백38명은 마을회관과 이장집 등에서 멍한 상태로 통한의 하룻밤을 보냈다.

재해대책반에서 마련한 떡과 빵으로 급한 대로 허기를 채웠지만 옷가지가 부족한 데다 기온이 뚝 떨어진 추위 속에서 큰 불편을 겪었다. 그나마 모포나 이불 등 구호물품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아이들과 노인들의 고통은 더욱 컸다.

가장 피해가 큰 석교1리 23가구 70명은 51평짜리 마을회관에서 지샜다.

이번 산불에 며느리를 잃은 許모(84)씨는 "선친 묘소를 손질하고 온 사이에 며느리가 변을 당했다" 며 땅을 쳤다.

강릉〓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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