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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세상] 해장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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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남자들의 생활에서 술을 뺀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문제는 후유증. 술자리는 폭음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이른 아침 어렵게 눈을 뜨면 머리는 지근지근 쑤시고, 속은 쓰리다.

집에서 시원한 북어 국이라도 한 그릇 끓여 먹으면 좋으련만, 바쁜 현대생활에선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그래서 오늘도 해장국집들은 붐빈다.

해장국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지역마다 그곳에 맞는 정서가 있고, 속풀이를 하는 방법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의 해장국은 콩나물 해장국이다. 콩나물을 이용해 맑은 국물을 만들고, 조개류를 넣어 시원하게 한다.

부산의 대표적인 해장국은 복국과 재첩국. 지금은 낙동강에서 재첩이 나지 않아 자연산의 시원한 맛을 기대하기 힘들다. 부산을 중심으로 마산.진해.충무 등지에서는 복국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하동이나 광양으로 넘어가면 재첩국이 주류다. 복어를 푹 끓인 국물은 담박한 맛이 일품이다.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을 듬뿍 넣고 끓인 하동.광양의 재첩국도 좋다. 약간 비릿하고 짭짤하면서 우유빛이 감도는 재첩국은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남도에서는 콩물을 많이 먹는다. 진득한 콩국수 국물을 연상케 하는 콩을 간 국물을 한 그릇 들이켜면 속이 시원하다. 새벽에 갓 만든 두부 국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장국은 뭐니뭐니해도 전주의 콩나물 해장국. 본디 전주는 콩나물?명산지로 유명하다.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인 해장국은 맛이 얼큰하면서 담박하다. 콩나물국에 새우젓을 살짝 얹어 먹으면 담박한 맛에 간간한 기운이 스며들면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경상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서는 물회를 해장국으로 먹는다. 오징어를 넣고 차갑게 한 국물을 한 모금 쭉 들이켜면 속이 시원해진다.

따로국밥은 대구 사람들이 사랑하는 해장국이자 아침 식사다.

국물과 밥이 각각 나온다고 해서 따로국밥인데, 선지가 들어간 따로국밥 한 그릇이면 속도 든든하다.

경주의 팔우정 로터리에는 해장국 집들이 많다. 선지를 넣고 푹 끓인 해장국은 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속풀이 국물이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국을 주로 먹는다. 바다든 민물이든 소라나 고둥 종류는 소화를 촉진해주는 역할을 한다.

된장을 풀고 민물 고둥의 일종인 올갱이를 듬뿍 넣고 끓여 아침을 개운하게 해준다.

서울의 해장국은 주로 사골 국물을 쓴다. 쇠뼈를 푹 고아 된장을 풀고, 야채와 선지 등을 넣어 끓인다.

이런 형태의 해장국들이 청진동 일대를 중심으로 남아있다.

원래 서울의 해장국은 쇠뼈 국물에 된장을 넣고 끓인 다음 우거지를 넣는 형태였다. 흐물흐물거리며 축 늘어진 우거지 맛과 갓 잡은 소의 신선한 선지의 탱탱한 맛이 잘 어울렸다.

예전의 된장국 같은 해장국에 비해 요즘은 얼큰한 뼈다귀 해장국 집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가짜 음식' 이 판치는 세상이라 뼈다귀를 그대로 넣은 해장국이 재료를 충실하게 넣은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고춧가루를 듬뿍 쳐 국물을 더 얼큰하게 만들고, 뼈에 약간 남은 고기를 입으로 쭉쭉 빨아먹으면서 국물을 들이마시는 건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것을 즐기는 우리 입맛 때문이리라.

해장국처럼 서민적인 음식이 없을 듯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조선조 서울의 양반들은 경기도 광주에서 해장국을 시켜먹었다고 한다. 배추 속대.콩나물.송이.표고.쇠갈비.해삼.전복을 된장에 섞어 하루 동안 푹 곤 것으로 갱(羹)이라 불렀다.

이것을 담은 그릇을 솜으로 싸 서울로 보내면 새벽녘 양반들은 집에서 온기가 도는 해장국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해장국도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기호가 아니었나 싶다.

이은숙 <음식전문지 월간 '쿠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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