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다시보기] '무량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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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아는 만큼만 보인다' 고 아무리 빼어난 예술작품도 볼 줄 아는 눈이 없으면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가려내는 안목이야 한번에 얻을 수는 없지만 그 식견을 슬쩍 빌릴 수는 있지 않을까.

이런 역할을 해주는 책이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1916~84)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1만5천원)다.

1992년에 다섯 권으로 출간된 '최순우 전집' 가운데 논문을 제외하고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짧은 글들만 다시 추려서 펴낸 것으로 94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한 때 판매가 주춤하긴 했지만 이 책이 대입 시험에 한 몫 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인기가 치솟아 지금도 하루에 30~40부가 팔려 나간다.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일러준다.

책의 제목이 된 부석사 무량수전 등 건축물을 비롯해 불상.금속공예.백자.회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별 우리 문화유산 대표작들을 도판과 함께 해설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도 있지만 장독대나 온돌방 장판 등 서민의 생활과 함께 해온 일상적인 것들도 포함돼 있다.

아름다움을 집어내는 저자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쏟아지는 문화재.미술작품 해설서 대부분이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전문적 내용이나 철학적 의미, 혹은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아 흥미를 끌고 있다면 이 책의 매력은 전문가의 혜안이 녹아있는 수려한 문체에 있다.

최순우는 국내 첫 미술사학자인 고유섭 전 개성박물관장의 제자.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년동안 박물관에서만 공직생활을 해온 '박물관인' 이 쓴 책이니만큼 읽는 이 입장에서는 선택의 잣대만 챙겨도 실속은 차리는 셈인데, 여기에다 문학성까지 갖춰져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매쪽마다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나 역사 등 정보도 빠지지 않는다.

문화재는 대개 이름부터 어려운 한자로 돼 있어 어렵다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무뚝뚝한 돌들' '무량수전은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등 신선한 우리말 표현을 써 한국미를 재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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