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서른둘 my real life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시에 야옹… 낮에도 자고, 초저녁에도 자고, 한동안은 한밤중에도 잠이 들어 있었지. 낮 내내 늘어지게 자다가 한밤중 느닷없이 깨어난 냐옴 양. 오랜만에 새벽을 맞은 ‘냐옴’ 양의 눈빛은 낮보다도 예쁜 초록 구슬. 한참을 번개처럼 날아다니더니 이제야 잠다운 잠을 잔다. 언제나처럼 한쪽 구석에서 몸을 한껏 움츠린 채 언제 그랬냐며 불시에 야옹.

여성중앙4차원 소녀, 골수천사, 패셔니스타…. 최강희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서른둘을 맞아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 아직도 성장통을 겪는 ‘어른 아이’의 고민, 엉뚱한 ‘강짱’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 찾기,그 담백한 프레임 안을 들여다보다.취재_민은실 기자 자료 제공_『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북노마드)

저녁때 일 끝내고 매니저가 저를 집 앞에 내려주고 가버리면 제일 먼저 나무 냄새가 나요. 그때부터 걸음이 느려집니다. 건물에 들어서서 계단을 오를 때면 학교 냄새가 나요. 아주아주 옛날 기억 속에서처럼.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비에 젖은 돌 냄새도 나고요. 그럴 땐 딱 뭔가라고 떠오르진 않지만, 다시 겸손해지는 것 같고 착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 시골 냄새가 납니다. 정말이에요. 요샌 늘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풀면서 “아~ 시골 냄새~” 한답니다. 엄마는 그런 딸을 보며 그냥 웃습니다. 시골 냄새란 뭔고 하니, 여름 모기향과 엄마가 베고 주무시는 대나무 베개, 그리고 커튼 같은 ‘발’ 그것들의 향기 조합이겠죠. 전에는 촌스러워서 싫어했던 그런 것들. 근데 요새는 그것들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로마 테라피가 따로 없죠.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 냄새는 좋다는 그 어떤 허브 향도 주지 못하는 것을 내게 줍니다. 내 집 냄새는 그런 것들을 줍니다. 엄마 품 같은 편안함들을

문득 돌아보니 서른두 살. 서른두 살의 ‘최강희’ 이름 앞에는 ‘최강동안’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고, 사람들은 저를 ‘4차원 소녀’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엔가 순간의 내 행동에 주목했으며, ‘골수천사’라 불러주기도 하고, 언젠가 문득 드라마에서 입었던 의상들이 히트를 친 후로는 ‘패셔니스타’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저인 것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저는 궁금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누군가가 알려주는 내가 나인 걸까요?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도 같아요.”

연기 경력 14년. 그동안 저는 연기자였지만, 저와 다른 캐릭터는 겁이 났어요. 따라서 저는 저만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제 자신을, 조금씩 저만을 오려내서 연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경험도 부족했고, 연기를 배워본 적도,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연기 경력이 쌓이면서 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능력까지 생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의 감정이 제 것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어졌어요.

지난여름 영화 ‘애자’ 촬영을 마친 이튿날 아이슬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기에 대한 갈증, 철부지 어른의 숙제,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은 나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이자, 서른둘 사춘기를 겪는 아가씨의 일기장이다.

저를 알고 싶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서른두 살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래서 한번은 일기장을 펴놓고 글을 적으려 했지만 한 글자도 적을 수 없었어요. 저에게 저란 무엇도 없는 느낌이었죠. 그립고 외로웠지만 그리움에는 대상이 없었고,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어요.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머릿속을 시끄럽게 할 뿐이었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은 음악도 찾을 수 없었죠. 나를 도둑맞은 느낌.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죠.

아마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김C에게 시규어 로스의 ‘헤이마’(Heima)라는 DVD를 선물받았어요. ‘제발’이라는 말과 함께. 김C의 어법에 의하면 ‘제발’은 ‘좋다’와 ‘틀림없이 네가 좋아할 것이다’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것을 본다면 좋아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 거지요. ‘헤이마’는 ‘집으로’ 혹은 ‘고향’이라는 뜻입니다.

시규어 로스는 우리나라 남한만큼 작은(인구가 31만 명이 조금 넘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의 대표 밴드예요. 아이슬란드인들은 아이슬란드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는데 시규어 로스는 아이슬란드어, 영어, 그리고 ‘희망 언어’로 노래합니다. 희망 언어는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 쏘르 비르기손’이 창조한 시규어 로스만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언어라고 합니다. 시규어 로스가 월드 투어를 마치고 자신의 나라에서 무료 투어를 하며 공연한 영상을 기록해 DVD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헤이마’입니다.

‘헤이마’에 담긴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와 음악은 정말 신비로웠습니다. 당시 저에게 그것은 충격적이었고, 저는 김C의 말처럼 그것에 빠져들었습니다. 위로가 되었어요, 그 모든 것이…. 좀 우습지만 저는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 심지어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것을 보고 들었죠. 그리고 그곳에 가고 싶었어요.

“언젠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아이슬란드입니다.”

드라마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인연을 맺은 내 친구, 선우선. 사실은 선이 두 살 많은데 나이 개념 없는 우리는 ‘친구’라는 호칭으로 편하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볕이 좋은 날 함께 산에 오르고, 영화를 보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외톨이가 된 것 같아 흐느껴 울 때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나의 소울 메이트. 어느 날, 선과 나눴던 안부 전화.

S 여보세요?
J 여보세요.
S 뭐하냐?
J 응… 그냥….
S 뭔 일 있냐?
J ……
S 어디 아파?
J 아니… 그냥 있었어.
S 무슨 일 있지?
J ……
S 뭔 일 있네….
J ……
S 너 우냐?
J ……
S 내가 갈까?
J 아니야.
S 어딘데? 어디서 또 친구 하나 없는 아이처럼 궁상 떨고 있어? 내가 갈게. 집이야?
J 아니야. 그냥… 괜찮아. 그리고 나… 밖이야. 그러니까 안 와도 돼. 정말 괜찮아. 빈말이라도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친구 하나 있는 게 이래서….
S 병신…. 알긴 아냐?
[띵동 띵동]
J …?
S 나 왔어. 문 열어. 아, 추워. 빨리 문 열어.

팟찌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