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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충처리인 리포트

외고 정원 줄인다고 사교육이 없어질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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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외국어 고등학교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한 여당 정치인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한 외고 논란은 정부의 위탁을 받은 특수목적고 제도개선 연구팀이 최근 외고개편시안을 마련해 공개함으로써 더욱 가열되고 있다.

이 논란은 외고가 애초 설립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그 핵심엔 사교육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사교육 과열의 책임이 어디 있는지를 따져 근원적 처방을 내리지 않고서는 외고 해법은 풀기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다.

얼마 전 서울 문정동에 사는 독자 김희수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부의 학원영업시간 규제가 되레 사교육을 조장해 역효과를 낸다는 의견이었다. 이 독자는 “학원에 규제를 가하다 보니 음성적인 불법 과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위험수당까지 붙어 과외비도 치솟고 있다. 수요가 있는데 규제가 가해지면 각종 탈법·편법이 판치는 것을 정치인과 공무원은 왜 모르느냐”며 답답해했다. 그는 “정부는 공교육을 외치고 있지만 학부모와 학생 입장에선 너무 이상주의적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을 가야 하는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하겠다는데 훼방을 놓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사실 사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과거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명분으로 내세웠던 건 사교육 철폐였다. 하지만 평준화 시책의 반작용으로 사교육은 없어지기는커녕 엄청난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공교육 부실화 등 평준화의 부작용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정도로 심각해지자 이명박 정부 들어선 수월성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과거 평등지상주의적 분위기가 되살아나면서 교육정책도 역주행하는 모습이 역력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의 외고 논란이다. 이번 외고 개편 시안의 골자는 외고로 존속할 경우 2012년까지 학년당 학급 수 10∼12개를 6∼8개로 줄이면서 학급당 평균 학생 수 또한 36.5→16.9명 수준으로 축소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안이 정부 정책으로 채택돼 시행된다 하더라도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아이가 외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서울 신림동의 독자 이수영씨는 “외고 정원을 줄인다는 것은 수월성 교육 수요를 외면하는 처사”라며 “오히려 경쟁률이 높아져 사교육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올 초부터 공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사를 자주 내보냈다. 망국병이 되다시피 한 사교육 문제를 풀고 교육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이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결과 공교육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일반 고등학교 교실의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다는 평가다. 독자들도 이런 기사를 많이 써 국가의 교육정책이 바뀌길 바란다며 큰 호응을 보냈다.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같은 공교육만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고를 반 토막 낸다거나 학원에 대해 규제와 단속을 벌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비를 줄여 나가는 것이라는 게 상당수 독자의 의견이다.

서명수 고충처리인,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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