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 → 세일 → 땡처리 … ‘옷의 일생’ 알아야 쇼핑 9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27일 오전 11시 서울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 문을 연 지 30분밖에 안 됐지만 고객 수십 명이 2층 여성복 행사장에서 의류를 고르고 있었다. 코트를 입어보던 김현자(54·여)씨는 “30만~40만원은 줘야 하는 브랜드인데 50% 할인 중”이라며 “맞는 치수가 없을까봐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는 이날 올해 마지막 정기세일을 시작했다. 평소 백화점 매출은 ‘큰 손’이 좌우한다. 상위 10% 고객이 전체 매출의 90%를 올려준다. 하지만 세일 때는 ‘개미’ 고객이 밀려든다. 각 업체는 한번 내놨다가 팔리지 않은 이월상품을 이때 푼다. 김씨가 입어본 코트도 지난해 겨울 상품이었다. 하지만 이월상품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한 브랜드인데 할인 폭이 제각각이고, 균일가로 파는 제품도 있다. 그래서 이월상품의 유통 과정을 알면 ‘쇼핑 9단’이 될 수 있다.

◆겨울 신상품의 삶=올겨울 신상품은 지난달~이달 백화점 매장에 첫선을 보였다. ‘정상가’에 전체 물량의 10~30%가 팔렸다. 제 값을 받는 기간은 여기서 끝. 이후로는 ‘몸값’이 낮아진다. 이어지는 백화점 세일에선 값이 10~30% 할인된다. 물량의 30~40%가 추가로 소진된다. 이번 세일 동안 백화점 정규 매장에서 세일해주는 상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일 동안 팔리지 않은 제품은 내년 1월께 백화점의 할인행사나 이벤트에 나온다. 할인가에서 10~20% 추가 할인해 판다. 이쯤 되면 ‘신상’의 자격을 잃는다.

이때 남은 제품은 각 브랜드의 창고행이다. 이들은 내년 겨울 이월상품으로 다시 나온다. 세일 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옆이나 행사장에 진열된다. 신세계 홍정표 마케팅팀장은 “1년차 이월상품의 경우 패션·잡화는 정상가보다 40~60% 정도, 시계·보석류는 약 25% 싸다”고 소개했다. 1년차는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이나 2001아울렛 같은 대형 아웃렛으로도 공급된다. 할인율은 보통 6개월 단위로 10%씩 올라간다.

2년차가 넘은 이월상품은 사람으로 치면 고령이다. 전문 업체로 넘어가 소규모 아웃렛에서 70~80% 할인된다. 백화점 세일 때의 1만~2만원 균일가 제품도 2년차 이상이 많다. 이러고도 남은 물량은 ‘땡처리’된다. 장당 500~3000원에 재고 처리업체로 인계되는데, 도로나 임시 점포에서 ‘장당 5000원’ 식으로 팔린다. 이랜드 김암인 이사는 “이 대열에도 끼지 못하면 국내에 반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중국·몽골 등으로 수출되거나 소각된다”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는 세일까지 거치면 물량의 60%가 소화된다. 남는 제품은 명품 아웃렛으로 가든지, 직원이나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패밀리 세일’에 나온다. 한 백화점 명품 바이어는 “에르메스·루이뷔통 같은 고가 브랜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미판매 상품을 외국 본사로 보내 폐기처분한다”고 전했다. 저렴하지만 엄연히 신상품인 ‘기획상품’도 있다. 디자인을 단순화하거나 많은 수량을 제작해 원가를 낮춘다. 롯데백화점 정종견 과장은 “예전엔 기획상품은 가격을 싸게 하는 게 우선이었지만 요즘은 트렌드를 반영하고 유행하는 컬러를 써 품질을 높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성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