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거감시에 시민단체 나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4.13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혼탁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8일 후보등록과 함께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됐다지만 이미 수개월 전부터 여야 각 정당과 후보들이 보여온 행태는 이런 전망을 낳기에 충분하다.

여야 지도부는 선거 후의 정국운영 주도권 장악을 넘어 차기 정권 쟁취까지 의식해 죽기살기식의 싸움을 벌여왔고 이런 행태는 앞으로도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 대한 이러한 과잉 의미부여 속에 여야는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을 마다하지 않았고 돈선거.관권선거 비판도 개의치 않았다. 비방.흑색선전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등 벌써 불.탈법으로 얼룩진 상태다.

특히 1위를 하지 못하면 끝장인 양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맞붙어 있고, 자민련이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무차별 공세를 펴는 중이어서 오히려 지금까지 이상의 난전을 치를 소지가 크다. 한마디로 새 천년을 맞아 처음 실시되는 16대 총선이 정치발전과 안정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던 국민의 기대와는 전혀 딴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정치권이 앞뒤 분별없이 난리를 피우는 만큼 선거를 관리.감시할 선관위의 기능과 역할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정선거법은 선거범죄조사 및 그 처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선관위의 기능 및 권한을 강화했다지만 그 자체가 미흡한데다 주요 정당 수뇌부 및 정부가 앞장서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듦으로써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미지수다.

게다가 선관위와 함께 부정선거감시의 양축이 돼야 할 시민단체와는 낙천운동 이후 되레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때문에 선관위의 권위도 상당히 훼손돼 공명선거 전망을 더욱 흐리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선관위에 새로 부여된 선거범죄 증거물 수거권, 임의동행.출석요구권이 제대로 행사될는지도 의문이다.

또 불법 우송물을 제재할 수 있도록 관련사실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지만 정보통신부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이유로 거부하는 등 정부기관간조차 협조가 안되는 마당이다.

중앙선관위는 2백44개 선관위별로 50명씩의 부정선거감시단을 구성해 감시와 단속에 나설 계획이나 만족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 요긴한 시점이다.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받는 시민단체는 부정선거 감시가 그간 추진해온 낙선운동 못지않게 중차대함을 감안해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선관위는 운동기간 중의 엄정한 법운용은 물론 선거 이후에도 재정신청권 등을 확고하게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더 이상 불.탈법이 횡행하는 선거가 안되도록 해야 한다. 여야 지도부도 이제까지의 구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국민적 지탄 속에 공멸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