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고딕 성당 안은 왜 깊은 숲 풍경처럼 비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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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딕 불멸의 아름다움
사카이 다케시 지음
다른세상, 288쪽
1만3000원

이 책은 지은이의 ‘고딕 체험’에서 비롯됐다. 적막한 밤에 스페인의 부르고스 대성당을 찾았던 그는 어둠의 분위기와 뒤섞여 깊고 생생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모습에 매료됐었다고 한다. 섬뜩하고 불길한 모습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고딕 양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책은 이 질문으로 시작됐다.

저자는 우리가 건축의 한 양식으로 배운 ‘고딕’을 건축양식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1897~1962)를 연구한 그는 고딕의 탄생과 수난, 부활의 과정을 유럽의 역사와 종교·사회·문화의 줄기를 통해 탐색한다.

그에 따르면 고딕 대성당에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뿐만 아니라 자연숭배 사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2~13세기 식량난에 시달려 농촌을 떠나 도시에 살던 농민들의 자연에 대한 깊은 애착과 감수성이 스며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성당 안이 무섭기도 하고 신비로워보이는 ‘깊은 숲의 풍경’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성당 내부에 줄지어 선 높은 돌기둥은 나무를, 아치의 곡선은 늘어진 가지와도 닮았는데, 저자는 고딕 성당이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근원적 분위기, 역동성, 생명감을 빚어냈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아미앵 성당을 모델로 건설된 독일의 쾰른 대성당. 1248년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도중에 중단됐다가 1880년에 완공됐다. 독일 고딕 부흥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다른세상 제공]

고딕은 또 도시화 현상에 휘말린 농민들의 불안과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간 성모 마리아 신앙, 그리고 유럽 전체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지모신 숭배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또 고딕이 인간의 정신에 근원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성스러움’의 본질, 즉 공포·전율·불안에 바탕을 두고 있는 종교적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엄하고 화려한 고딕 대성당은 지상에서 신의 나라인 천상을 향해 걸쳐 있는 ‘사다리’의 이미지다. 저자는 고딕 대성당이 감동적인 것은 절제와 균형, 안정성과 합리성을 넘어 끝없이 높은 곳을 향한 본질, 즉 카리스마적인 힘에 대한 강한 동경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고딕은 설 자리를 잃었다. 중세의 미학이 광기에 관대했다면 고전주의 시대에는 그 비이성적인 특징 때문에 외면받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딕의 매력과 가치를 살피기 위해 유럽의 미술·음악·건축은 물론 중세 스콜라 학파와의 연관성,종교개혁의 영향 등을 추적하고 에펠탑과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에 담긴 고딕의 본질까지 들추어낸다. 생생한 체험과 호기심에서 출발한 한 학자의 지적 여정이 얼마나 풍부한 얘기를 캐낼 수 있는지를 엿보게 해주는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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