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명의] 부천 성가병원 신경외과 백민우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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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환자들은 명의를 찾는다. 생명에 대한 외경과 학문의 깊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화려한 명의가 많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더 많은 명의들이 환자를 위해 묵묵히 의도(醫道)를 걷고 있다. 인맥과 학맥이 두터운 우리 의료계에서 드러나지 않게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숨은 명의' 를 소개한다.

지난해 11월 이모씨(61.안양 평촌)가 혼수상태에서 부천시 가톨릭대 성가병원에 들이닥쳤다.

이미 몇몇 병원에서 '수술불가' 판정을 받아 대한의사협회의 권유로 이곳까지 온 것.

그녀의 머리 속에 있는 귤 크기만한 동맥류(기형적인 혈관꽈리)가 뇌를 압박하면서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동맥류가 매우 크다는 것 외에도 혈관가지가 기형이었다. 기존 방법으로 동맥류를 메우면 한쪽 혈관가지가 막히기 때문에 스탠트(그물망)를 사용해 수술했다. 지난주 CT사진에서 동맥류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면서 가지혈관도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를 수술한 이 병원 신경외과 백민우교수(52)의 말이다.

백교수는 뇌혈관성형술분야에선 학계에서 인정하는 선두주자다. 1996년 대한신경외과학회 뇌혈관수술연구회를 조직,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술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뇌혈관성형술이란 머리를 열지 않고 막힌 뇌혈관을 뚫거나 새 혈류를 만들어주는 치료법. 사타구니를 지나가는 동맥을 통해 볼펜심만한 도관을 머리속까지 집어넣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도관 속에는 낚시줄 굵기 정도의 또다른 도관이 있고 그 끝에 스탠트(그물망)나 풍선이 달려있다. 이를 막힌 곳에 장치해서 혈류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스탠트를 이용한 성형술을 미국의 첫시술 6개월후인 98년 국내 처음 성공시켰다. 지금도 이 방법으로 시술하는 병원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 수술의 장점은 머리를 열지 않기 때문에 수술 후유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점.

"스탠트 시술이 심장쪽 보다 늦었던 것은 머리속 동맥 직경이 3~4㎜에 불과한데다 굴곡이 심해 스탠트를 막힌 곳까지 밀어넣기 어려웠기 때문" 이라며 "부드러운 스탠트개발과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 라고 말한다.

지난해 그는 13케이스의 그물망 시술을 포함 50례의 혈관성형술을 시행, 이중 어려웠던 성공사례를 모아 한일 뇌졸중학회에서 발표했다.

성가병원은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지난달 국내 처음으로 3차원 입체영상 혈관조영기를 도입, 뇌졸중센터를 설립했다.

혈관성형술 대상자는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환자들.

"뇌혈관질환 수술은 앞으로 머리를 여는 개두술에서 혈관내 수술로 크게 바뀌고 있다" 며 "항혈전제로 원인치료가 안되는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고종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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