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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문화센터, 소통과 친화의 장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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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연해주는 구한말과 일제 치하를 거치며 가장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그 연해주의 중심인 우수리스크에 우리 선열들을 기리는 자그마한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은 뒤늦게나마 후손된 도리를 한 것이다. 한편으론 수교 20주년을 앞둔 한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요충지인 연해주에 새로운 우호의 가교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있다.

조그마한 건물 하나에 불과하지만 이 센터를 건립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폐가처럼 방치된 옛 소련의 유치원 건물을 우수리스크시로부터 매입해 리모델링을 마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예산 확보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국내외 시공사들이 공사 중 부도를 내는 등 내우외환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동포들의 정성과 관심으로 좌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차질을 빚을 때마다 뜻있는 인사들의 보이지 않는 쾌척이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목사, 송월주 큰스님,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등이 그런 분들이었다.

고려인문화센터에는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와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주역사관, 한국어와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교육센터, 외래병원, 한국문화체험관, 다목적 공연장, 한국 방문객 간이숙소 등이 갖춰져 있다. 이곳은 앞으로 고려인뿐 아니라 러시아인을 비롯한 많은 소수민족의 소통과 친교의 장이 될 것이다.

이 센터가 이런 역할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 센터 운영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센터가 자리를 잡으려면 앞으로 3년이 고비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3년 뒤에는 자체 수익으로 자립 운영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그때까지는 외부 지원이 절실하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인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 기업들의 많은 진출이 필요하다.

우수리스크는 교통·물산의 중심지로서 앞으로 연해주의 중심도시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이 근처에는 발해의 다섯 수도 가운데 한 곳인 동경성 유적이 있고, 헤이그 밀사의 정사(正使)이자 초기 독립운동의 지도자 이상설(李相卨) 선생의 유허비와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비 등 독립운동의 사적지가 많다. 또한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18만 명의 고려인 동포가 강제 추방당했던 한 많은 출발지 라즈돌노에는 기차역도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성을 타진한다면 사업 수익과 센터 지원 기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아무쪼록 어렵사리 마련된 센터가 역사 교육과 친화의 장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부영 고려인문화센터추진 상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