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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허만하 '낙타는 십리밖에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길이 끝나는 데서

산이 시작한다고 그 등산가는 말했다

길이 끝나는 데서

사막이 시작한다고 랭보는 말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겨진 지도처럼

로슈지방의 푸른 언덕에 대한

향수를 주머니에 꽂은 채

목발을 짚고 하라르의 모래바다 위를

걷다가, 걷다가 쓰러지는 시인

모래는 상처처럼 쓰리다.

시인은 걷기 위하여 걷는다

- 허만하(68) '낙타는 십리밖에서도' 중

사람들은 걷는다. 길이 있어도 걷고 없어도 걷는다. 누구는 길의 끝에 산이 있다고 하고 누구는 길의 끝에 사막이 있다고 한다. 랭보가 걸어갔듯이 시인의 길은 모래바람 부는 사막일 수밖에 없는가. 통영 '청마문학관' 앞에서 만난 허만하 시인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사막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오늘은 그가 '한국시인협회상' 을 받는 날, 모래바람이 아닌 꽃들이 반겨줄 것을.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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