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기획] 탈·불법 선거 지능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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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1일 서울 M고에서 열린 민주당 후보의 지구당 개편대회. 본사 취재팀의 잠입 취재 결과 음식.술을 제공하는 '먹자판' 개편대회가 어김없이 재연됐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향응을 제공하는 과거와는 행태가 달랐다. 대회 후 개편대회 참석자들은 접선하듯 5~7명씩 점조직으로 움직였다.

골목별로 정해진 식당에서 은밀히 식사한 뒤 외부 사람은 알 수 없는 문양의 쿠폰을 내밀었다. 말로만 듣던 '점조직 향응' 이 한창이었다.

4.13 총선이 혼탁.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지능화된 불.탑법 선거운동이 판치고 있다.

선관위와 경찰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스파이 접선을 방불케 하는 '점조직 향응' 과 '원정 향응' 을 하고 후보와 유권자가 짜고 '누이 좋고 매부 좋기' 식 담합 탈법을 벌이기도 한다.

남의 명함을 이용, 후보 자신의 경력을 버젓이 소개하고 당원용 의정보고서를 가장해 일반 가정에 개인 홍보물을 무차별 뿌리는가 하면 대리인을 내세운 불.탈법을 예사로이 저지른다.

대전지역에 출마한 한나라당 A후보의 지구당 사무국장 C씨의 명함. 명함 왼쪽에는 A후보의 이름과 '○대 의원' '○○부 차관' 등 5~6개의 화려한 공직경력이 작은 글씨로 자세히 소개돼 있고 오른쪽엔 '사무국장 ○○○' 라는 이름만 적혀 있다. 겉으로 봐선 누구 명함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후보의 명함에 전직을 표시할 수 없는 선거법을 교묘히 피하고 있는 것이다.

불.탈법은 수법이 워낙 교묘해 선관위나 경찰의 추적도 허탕치기 일쑤다. 흑색선전만 해도 과거의 유인물 무차별 살포가 아니라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선별적으로 선전전을 벌이고 대부분의 우편물 발송지는 2백~3백㎞ 떨어진 외지 우체국을 이용해 법망의 추적을 피한다.

지난 4일 충북 한 도시의 7개 동장들과 도내 14개 읍.면장 앞으로 배달된 흑색선전 우편물은 서울 광화문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고 발송자들이 지문을 남기지 않아 경찰이 지문 채취에 실패할 정도로 치밀했다.

중앙선관위 김호열(金弧烈)선거관리관은 "단속망을 피하는 후보들의 불.탈법 선거운동은 마치 첩보영화나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다" 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김기봉.이상렬.서승욱.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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