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기획] 후보들의 교묘해진 불·탈법 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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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망을 피하려는 16대총선 출마자들의 수법은 선관위측과 경찰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선관위의 불.탈법 선거 단속 건수가 15대총선 같은 기간에 비해 5배 이상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날로 지능화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불.탈법 행적을 추적하기엔 힘에 부친다.

◇ 점조직 향응〓지역구내의 향응은 철저히 점조직에 의해 이뤄진다.

중간책만 지정 식당을 알고 5~10여명의 주민들은 중간책을 따라다니면 된다.

외부에서 어설프게 끼여들었다간 당장 눈에 띈다.

점조직이 늘다 보니 청중동원 행태도 예전과 달라졌다.

관광버스로 대규모로 청중을 동원하는 후보들은 '신출내기' 란 핀잔을 듣는다.

다선의원의 행사일수록 봉고차와 지프가 주변 골목길을 가득 메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교통편이 소형화하고 있다" 는 게 선관위 관계자의 말이다.

때문에 행사장 주변의 질펀한 향응제공 현장이 자취를 감추는 추세다.

대신 인근 지역 골목길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소규모로 이동해 흩어져서 먹어야 표나지 않는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 원정 향응〓단속의 눈을 피해 지역구를 벗어나 외지에서 벌이는 '원정 향응' 이 등장했다.

지난 6일 부산 서구의 한 횟집. 10여명이 왁자한 먹자판을 벌이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들의 주소지는 부산 중부지역의 한 선거구. 후보자의 부인이 지역구를 벗어나 향응을 베풀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구시 선관위 관계자는 "향응은 주로 포항.해인사 등지의 외부 관광지에서 이뤄진다" 고 말했다.

◇ 담합탈법〓후보자와 유권자가 사전 교감을 갖고 '누이좋고 매부좋기' 식 탈법도 저지른다.

지난 7일 오후 3시 부산 남부의 H택시회사 차고. 민주당 K후보는 '종사원 일동은 K위원장님의 당선을 기원합니다' 는 플래카드 아래에서 지지를 호소했고 회사대표들은 행사뒤 "회사의 면허취소 위기를 해결해달라" 고 민원을 넣었다.

서로간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 위법성 조사에 나선 선관위는 "행사 이틀 전 택시기사 60여명이 한꺼번에 당원으로 등록했다" 는 후보와 회사측의 엉뚱한 대답을 들었다.

이들은 "이날 행사는 당원집회" 라고 주장하며 법망을 비켜가려 했다.

선관위측은 "유권자와 후보들이 입을 맞추는 경우 위법성을 밝히긴 어렵다" 고 말했다.

◇ 대리인 내세우기〓후보자들은 뒤로 숨고 대리인들이 총대를 메는 것으로 법망을 피한다.

지난주 대전의 한 지역구에서 벌어진 '앨범 배포 사건' 도 이런 유형.

민주당 후보측의 수석 부위원장의 명함이 부착된 앨범이 지역내에 뿌려졌고, 자민련 지구당에 그 중 한권이 입수됐다.

자민련측은 "수석 부위원장의 이름을 이용한 민주당 후보측의 물량 공세" 라며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빠져나갈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계산" 이라며 검찰 고발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8일 경북 안동시 수곡리에서 열린 '주민 출자금 이자 배당 관계회의 및 윷놀이 행사' 엔 여당후보측 관계자들이 참석해 자당 후보를 홍보했다.

돈 10만원이 행사비조로 제공됐다.

선관위는 돈 제공자로 지구당 사무국장 K씨를 지목했지만, 당사자들은 한사코 협의회장 유모씨가 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선거법 위반일 경우라도 사무국장보다 협의회장이 처벌받는 쪽이 후보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기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주장이라는 게 지역 선관위의 판단이다.

◇ '안면' 이용 신고 막기〓인정상 차마 고발하지 못하는 '안면'을 내세운 불법운동도 많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지역의 K갤러리에서 열린 羅모씨의 섬유전엔 이 지역 여당후보 J씨의 부인 P씨가 나타났다.

참석자 대부분은 P씨와 대학 동문. P씨는 동문임을 내세우며 여성 월간지를 연상시키는 1백62쪽짜리 총 천연색 당원용 화보집을 배포했다.

전화를 통한 지지호소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거의 신고하지 않는다.

역시 '안면' 때문이다.

J후보는 초등학교 어머니회 명단을 활용하는 경우. "××엄마한테 소개를 받았는데 잘 봐달라" 는 전화홍보를 벌이는 것이 확인됐다.

◇ 교묘해진 흑색선전〓상대 후보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매터도가 난무하지만 진원지 파악은 더욱 어려워졌다.

외지 우체국을 이용하는데다 지문 등 수사단서를 일절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발(發) 괴문서의 발송자를 추적 중인 청주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발송자가 워낙 치밀하게 신원을 숨겨 수사가 난항을 겪고있다" 고 토로했다.

기획취재팀〓김기봉.이상렬.서승욱.조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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