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주머니 차는 부부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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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43.의사)과 성격 차이로 지난 2월 이혼한 한모(31)씨. 그는 남편이 이혼에 앞서 자신의 명의로 돼있던 재산을 몽땅 빼돌리는 바람에 졸지에 빈털터리의 이혼녀 신세로 전락했다.

전 남편은 한씨의 위자료.재산분할 청구소송에 대비해 시가 6억원짜리 아파트를 여동생 이름으로 명의변경하고, 수천만원이 예금된 은행 통장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바꿔 놓았다. 현재 한씨는 친정 부모에게 세살짜리 아들을 맡긴 채 동생집에 얹혀 살고 있다.

가정불화 등으로 이혼이 급증하면서 배우자 몰래 재산을 빼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동안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소송은 각각 7425건과 2441건에 달했다.

조인섭 변호사는 "한달 평균 150여건의 이혼 상담 중 배우자의 재산 은닉 문제가 30% 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 숨긴 재산은 찾기 어려워=재산을 숨기는 배우자들이 많은 것은 법원이 이혼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위자료.재산분할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이혼 후 뒤늦게 빼돌린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소송을 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예금은 금융거래실명제 때문에 조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용정보회사 등을 통해 배우자의 재산을 조사하려고 해도 이들 회사가 거부하는 상황이다. 배우자의 재산상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손쓰려고 해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양육비 문제의 경우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30일 정도의 감치 또는 100만원 정도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이 고작이다. 2002년 이혼한 고모(36)씨는 남편이 매달 3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양육비를 주지 않아 속을 썩이고 있다. 고씨는 "대응 절차가 복잡하고 재판기간이 1년 정도 걸릴 뿐 아니라 300만~400만원 하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양육비 받는 것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 재산 피해 줄이려면=신세대 부부들은 부동산의 소유권을 공동 명의로 등기하는 등 이혼에 따른 재산다툼과 경제적 불이익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지난 3월 결혼한 장모(33)씨 부부는 5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마련한 2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강씨 명의로 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이혼에 대비해 "이혼할 경우 아파트 매각대금은 절반씩 나눈다"는 내용의 각서를 써 공증을 받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이혼할 경우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결혼하기 전에 미리 약정하는 '부부재산계약'을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혼을 결샘했을 경우 배우자의 재산을 미리 파악하고, 어느 한쪽이 재산을 맘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해당 재산에 대해 가압류나 가처분 신청을 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명숙 변호사는 "미국처럼 이혼할 때의 재산신고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모든 재산을 상대방에게 주도록 하는 법률적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용.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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