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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환의 와인… 와인…] 1. 와인과의 첫 만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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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종류도 많고 사연도 많은 와인. 중앙대학교 국제경영 대학원 와인컨설턴트 과정의 주임교수인 정진환씨가 매주 와인 잔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차츰 경기가 좋아지니 취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다시 많아진다. IMF 체제때 된서리를 맞았던 '폭탄주' 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술문화는 사회 저변의 정서를 반영한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문화의 잔재로 남은 '취하기 위한 술' 은 이제 새 천년을 시작하는 우리의 모습 중에서 지워버려야 할 가장 큰 오점이다. 폭탄주를 내 돈내고 먹는 사람이 없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음습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술문화도 내 돈 내고 내가 행복한 음주가 정착해야 한다.

최근의 와인 열풍은 이러한 비뚤어진 자화상에 대한 자기 성찰이라 이해하고 싶다. 술은 마셔야 하고 몸도 생각해야 하니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고, 이웃 일본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좋다고 시작하자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꼭 넥타이를 매야 할 것 같고 왠지 어렵게 느껴진다. 막상 냄새를 맡고 즐겨보자니 어렸을적 어른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냄새는 왜 맡니" 하시던 기억도 떠오르고…. 아무튼 어색하고 어렵다. 결국 문화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데 성급하게 흉내만 내려고 들면 그야말로 다친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 이라는 사실이다. 모른다고 창피할 것도 없다.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흔히 상상하는 긴장된 분위기의 와인 마시는 모습들은 일단 잊어버리시라.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가 전부라면 서구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벌써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야 마땅한데 1년에 국민 1인당 70병 정도를 마시는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3분의1에 불과하다지 않은가.

그들에겐 와인은 막걸리요, 소주요, 맥주다. 적어도 서구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점은 포도주가 술이라는 사실이다. 마시면 기분좋고 혈색이 좋아지며 말이 좀 많아진다.

학교 다닐 때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세단계가 뭐냐는 퀴즈의 답이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은 뒤 문을 닫는다' 였듯, 와인을 마시는 단계도 간단하다. 와인 병뚜껑을 따고 잔에 따라서 마시면 된다. 양식 풀코스가 없으면 어떻고, 와인 잔이 아니면 어떤가.

손으로 안주를 집어먹으면 강제 구인되는 것도 아니잖은가. 고등학교시절 부모 몰래 처음 마셨던 소주가 처음부터 맛있었던 사람은 없었듯이 와인도 처음부터 맛을 알 수는 없다.

새 문화를 경험하면 5년쯤 젊어진다. 이제 새로운 술, 현존하는 술 중 가장 건강에 유익하다는 술인 와인을 일단 마셔보자. 와인의 맛과 향에 취해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이다.

바꿔, 바꿔, 술도 바꿔.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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