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교섭창구, 3단계로 단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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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년에 시행되는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를 3단계에 걸쳐 단일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자율적인 창구 단일화→과반수 노조에 교섭권 부여→공동대표단 구성 방식이다. 또 파업을 하려면 모든 노조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투표를 거쳐야 한다.

노동부는 20일 비공개로 열린 노사정 실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운용 방안을 노사에 공개했다. 교섭 단위는 기업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개별 사업장에서도 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전국에 공장이 있는 A사는 공장별로 교섭하는 게 아니라 A사 전체를 묶어 단일교섭을 해야 한다. 다만 사업 내용이 이질적이거나 근로자의 근무 형태 등이 다른 사업장과 차이가 있으면 사업장별로 교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섭 창구는 무조건 단일화해야 한다. 생산직·사무직·연구직 등 직무별로 노조가 구성돼 있어도 마찬가지다. 3단계 단일화 방안 중 첫 단계는 노조끼리 자율적으로 교섭 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자율 단일화 기한은 7~20일이다. 기한 안에 단일화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과반수의 조합원을 확보한 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규모가 명확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나 각 지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조합원 수를 확인해 준다.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각 노조가 참여하는 공동 교섭대표단을 꾸리게 된다. 대표단 구성 방법은 노조에 일임한다. 조합원의 선거로 대표단을 선출할 수도 있고, 조합원 수에 따라 각 노조의 대표가 일정 비율씩 참여하는 비례대표 형태로 구성할 수 있다.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는 노조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노조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투표해 과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전 조합원 투표를 거치지 않은 쟁의행위는 불법이 된다. 한 개의 노조가 단독으로 쟁의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복수노조 운용안은 ▶산업현장의 혼란 예방 ▶다수 노조의 횡포 방지 ▶소수 노조의 권익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이 방안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시도하고, 합의가 안 되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명시해 내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노동·경영계는 반대=경영계는 “정부의 안은 사실상 비례대표를 허용하는 것으로 노노 간의 갈등을 유발해 원활한 교섭을 방해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한국경총은 대신 조합원 수가 많은 노조에 교섭권(다수노조대표제)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와 노동계가 모두 반대했다. 경총의 안을 적용하면 각각 38%, 35%, 27%의 조합원을 보유한 3개의 노조가 있을 경우 기업은 38%의 조합원을 가진 노조와 교섭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수의 조합원 의견을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기업이 특정 노조를 지원해 숫자를 불린 뒤 교섭하면 어용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노동계는 “모든 노조가 사용자와 자유롭게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사정회의에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된 총파업 시기를 앞당길 계획이다. 정치권과 연계해 의원 입법 형태로 노동계의 요구안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낼 구상도 하고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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