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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아이콘 에드워드 권과 키친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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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주방으로 들어와 감사의 악수를 청했고, 마돈나는 “당신 음식이 섹스보다 좋군요”라고 말했다. 강원도 토박이, 국내의 작은 전문대학 조리학과를 졸업한 백그라운드 제로의 그가 전 세계 거물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땀과 눈물 덕분이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도 쉽지 않지만, 힘겹게 오른 그 자리를 놓기란 더더욱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에드워드 권(권영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최고의 대우와 대접을 스스로 포기하고 낯설고도 험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꿈 때문이었다.

제대로 요리를 배워보겠다는 첫 번째 꿈이 국내 최고급 호텔 셰프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눈물 젖은 미국 생활을 하게 한 계기였다면, 요리를 통해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두 번째 꿈은 두바이의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총괄 수석 주방장 자리를 박차고 한국행을 선택하게 했다.

한국인인 그가 한국을 시작으로 진짜 맛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꿈. 한국 음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고, 한국인 셰프들을 세계적인 셰프로 양성하고, 그리하여 요리를 통한 글로벌 한국을 만들겠다는 것. 그는 그렇게 원대한 꿈의 실현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 1st recipe_베컴 부부, 디카프리오가 열광했던 바로 그 요리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오후, 매장 안은 여전히 북새통이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오픈 주방에서는 셰프들의 손놀림이 분주했고, 서비스 직원들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느라 바빠 보였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 푸드 코트 바로 옆에 마련된 아담한 규모의 독립 매장. 오렌지 컬러를 주조색으로 꾸민 공간은 ‘에디스 카페’라는 캐주얼한 이름만큼이나 활기가 넘쳤다.

이 광경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한 남자, 카페 안을 흘끔거리던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 근육을 풀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바로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에드워드 권이다. 버즈 알 아랍 호텔 총괄 수석 주방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한 끼 400만원짜리 요리를 만들고, 420명의 셰프들을 진두지휘하며 전 세계 VIP들을 요리로 쥐락펴락했던 그가 서 있는 공간치고는 참으로 작았다.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번듯한 장소에서 값비싼 음식을 팔았겠죠. 하지만 전 대중적인 가격으로 합리적인 접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2만~3만원짜리 음식을 1만원 이하에 맛볼 수 있는 공간, 에드워드 권이라는 이름 때문에 막연히 비쌀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든지 비싸야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이런 시장 개념을 부수고 싶었어요. ‘에드워드 권의 요리는 비싸다’라는 고정관념을 역으로 치고 가는 거죠.”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카페에는 일반적인 푸드 코트의 음식보다 가격이 낮은 메뉴도 있다. 게다가 10명의 주방장 중 6명이 버즈 알 아랍 호텔 출신이고, 고급 레스토랑처럼 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고객이 돈을 내면서 오히려 미안해할 정도다. 에드워드 권의 음식을 먹으러 갈 때 마음이 설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일할 때 만큼은 철저한 완벽주의자로 면신한다. 그의 이런 성격은 요즘 출연 중인 QTV 프로그램 ‘예스 셰프’(매주 금요일 밤 12시)에서 절정을 보여준다. 제2의 에드워드 권을 찾기 위한 키친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예스 셰프’는 9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2명의 도전자들이 사전 정보 없이 블랙박스 안에 주어지는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창의력과 순발력을 겨루는 방식. 그런데 첫 방송 때부터 도전자들을 대하는 그의 거침없는 태도가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유명 쇼 프로그램인 ‘고든램지의 헬스키친’과 비교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 거친 욕설은 물론이고 “당신이 만든 요리는 먹어보고도 싶지 않습니다” “빵점을 드립니다” 등 도전자들의 눈물을 쏙 빼는 독설로 ‘셰프계 김구라’라는 별칭까지 생겼을 정도다.

**** 2nd recipe_군대보다 더한 주방의 군기를 유지하는 독설 한 스푼

“저도 그 얘길 듣고 ‘내가 그 정도로 너무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김구라씨의 독설과는 좀 다르지 않나요? 저는 단지 프로페셔널에 관련된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물론 듣는 입장에서는 정말 기분 나쁜 얘기들이죠. 하지만 저 또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했어요. 예비 셰프들에게 그만큼 압력을 주는 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압력을 가할 땐 가하고 잘했을 땐 정말 잘했다고 마음껏 칭찬을 해주죠. 연애랑 똑같아요. 밀고 당기는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하거든요(웃음).”

그의 독설이 ‘방송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실제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로 에디스 카페에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독설을 라이브로 구경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주방의 군기는 군대보다 더해요. 버즈 알 아랍도 마찬가지였고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그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해요. 주방이란 곳은 한순간에 인생을 마감할 수 있는 무서운 공간이에요. 포크, 국자, 칼 할 것 없이 주방의 모든 기기가 무기니까요. 그래서 강하게 군기를 잡을 수밖에 없어요. 조직 체계가 엄격해야 군대처럼 항명하지 않을 테니까요. 일할 땐 엄격하게 하고 일이 끝나면 장난치는 사이가 되죠.”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요리사를 꿈꾸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의 후계자가 되겠다고 서류를 내민 1000여 명의 지원자들, 그중 추리고 추린 200명을 14시간에 걸쳐 면접을 보는 동안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촬영을 거듭할수록 예비 셰프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보면 보람도 느낀다.

“한 명의 셰프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거치는지, 요리가 얼마나 프로페셔널한 아트인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어떤 기업에서는 제 이름을 걸고 물건 하나 팔 수 있게만 해주면 10억원을 준다는 제안도 했었어요. 그런데 저를 보고 있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돈에 팔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죠. 제가 약속하건대 스스로 브랜드를 론칭하지 않는 이상 제 이름을 파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가 마흔도 채 안 된 나이에 위인전 목록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팔할은 생존을 위한 눈물과 혹독한 시련 덕분이었다. 재수 시절 단지 군대에 가기 싫어 대학에 입학했고, 그나마 당시 실력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하다 보니 조리학과를 가게 된 것까지를 우연이라고 치면, 제대 후 그야말로 생계 수단으로 요리를 시작한 시점부터가 생존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저의 원래 꿈은 요리사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출을 해서 경양식집 주방에서 일한 게 요리와의 첫 인연이었죠. 사람들은 제가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보겠다고 안전한 직장(당시 그는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근무 중이었다)에 사표를 던지고 미국에 간 지 며칠 만에 9.11이 터졌어요. 그 다음 날 셰프 15명 중 11명이 잘리더군요. 독종 소리를 들어가며 하루에 20시간씩 잠을 안 자고 일했어요. 중노동 무임금이었죠. 대성하기 위해서? 천만에요. 살아남기 위해서였어요. 저는 영주권자도 아니고 영어도 못하는데 잘리면 갈 데가 없잖아요.”

**** 3rd recipe_생존을 위한 눈물 한 조각, 버리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진리

8년 전, 결혼 후 일주일 만에 샌프란시스코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아내를 꾀어 감행한 미국행. 지나고 보니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천이 됐지만, 당시엔 후회의 연속이었다. 고된 몸도 몸이지만 월급의 대부분을 월세로 지출하고 나면 고작 150달러를 가지고 한 달을 버텨야 했으니 생활은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 중이던 아내가 주정부에 분유 값을 신청했을 정도. 너무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갔을 때 ‘당신은 할 수 있다’며 함께 울어주던 아내가 그에겐 유일한 힘이었다.

그 후 리츠칼튼 샌프란시스코 호텔 조리과장, 서울 W호텔 부총주방장, 중국 톈진 셰라톤 그랜드 호텔 총주방장 등을 거쳐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 수석 총괄 주방장 자리에까지 올랐고, 2006년에는 두바이 최고의 셰프 어워드 상을 수상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그런 그가 5억5000만원의 연봉, 최고급 자동차와 숙소, 아이들의 학비까지 모두 제공되는 버즈 알 아랍의 수석 총괄 주방장 자리를 내놓고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열이면 열 모두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버즈 알 아랍은 종신 계약이었어요. 그게 싫었죠. 그곳에서 2년 반을 일했는데 그쯤 되면 오는 손님도 다 알고 그분들이 뭘 원하는지도 다 알아요. 하다못해 호텔 곳곳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죠. 그때부턴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스스로 발전이 없는 거죠. 제가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모두들 말렸지만, 저는 지금이라도 다시 버즈 알 아랍으로 갈 수 있어요. 더 큰 꿈을 채우기 위해선 버리고 비울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죠.”

다른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정작 자신은 끼니를 거를 때가 많지만 이처럼 힘든 생활을 감내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기 때문.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는 좀 누리며 살아도 될 텐데 고생을 사서 한다고. 하지만 천재가 아닌 이상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선천적으로 감각이나 능력을 타고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타고난 사람은 자만하기 쉬워서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더 빛날 때가 많아요.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 EQ 때문에 요리를 많이 가르친다죠? 요리는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아이들의 감각을 키우기에 정말 좋죠. 그런데 단순히 교육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흥미를 잃기가 쉬워요. 학원 같은 데 보낼 필요도 없어요. 그냥 집에서 엄마랑 같이 요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손으로 주무를 수 있는 아이템 위주로 하면 더 좋죠. 수제비 만들 때 밀가루 반죽 한 덩이 딱 떼어 아이에게 주세요. 무엇을 만들든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아이가 만든 걸 스스로 먹게 하면 성취감도 커지죠. 저는 아홉 살, 네 살인 두 아들에게 하다못해 음식에 소금 넣는 거라도 직접 하게 해요. 그리곤 네가 만든 음식이라고 말해 주죠. 그러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몰라요(웃음).”

스스로를 더없이 행복하게 하는 요리는 그가 가진 권력이고, 대중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예술이다. 더구나 그의 또 다른 목표인 요리 학교도 결국 사회에 모두 환원할 생각이라니 이것이 바로 에드워드 권의 진짜 브랜드 파워가 아닐까. 100년, 200년이 지난 후 역사가 평가해 주는 셰프가 되는 것, 에드워드 권의 최종 목표는 바로 그것이다.

취재_박진영 기자 사진_문덕관(studio lamp) 장소 협조_에디스 카페(Eddy’s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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