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사격장엔 여전히 일본인 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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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안다. 사격장 군기가 얼마나 센 지.

현역병 시절인 1980년대 중반, 사격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병사가 갑자기 일어나 “교관님, 총이 격발되지 않습니다”고 외쳤다.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팬다'는 말을 그때 실감할 수 있었다. 실탄사격으로 군생활의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난 14일 부산의 실탄사격장 화재로 11명이 사망했다. 이중 7명은 일본인 관광객. 한국으로 여행 온 일본인들이 실탄사격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위대 지원자 외에는 군복무 경험이 없는 일본인들이 실탄사격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분석이 있었다.

19일 오후 서울 도심에 있는 한 실탄사격장을 찾았다. 꽤 넓은 휴게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직원이 다가와 “회원가입을 위한 인적사항을 기입하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을 적어 건네니 이번엔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 직원은 “쏴보고 싶은 총이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이라고 하자 탁자 위에 놓인 안내책자를 보여주며 골라보라고 했다. 모두 권총이었다. “좋은 총 2개만 골라달라”고 부탁하자 직원은 BERETTA 92FS INOX(9mm)와 SMITH & WESSON 38구경 리볼버를 권했다.

먼저 베레타를 쏴보기로 했다. 10발에 2만원이지만 처음 오는 손님은 회원가입비 1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3만원을 건네고 일어서는 순간 출입구로 남녀 한쌍이 들어왔다. 일본인이었다. 사격실 입구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문이 열리며 표적지를 든 남자 한 명이 안전요원과 함께 나왔다. 역시 일본인이었다.

사격실 입구에서 안전요원이 방탄복을 입혀준 후 보안경과 귀마개를 줬다. 장비를 갖추니 영락없는 사격선수 모습이다. 가운데 사로를 배치받았다. 격발대 앞은 총을 쏘는 부분 외에는 투명 아크릴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권총은 아크릴판 바로 안쪽 쇠줄에 걸려있었다. 사대 앞에 서자 안전요원은 표적지를 걸어 사로 안쪽으로 보낸 후 “이렇게 오른손으로 권총을 잡고 왼손은 총 아래쪽을 받치세요”라며 간단하게 권총을 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안전요원은 곧바로 실탄 10발이 들어간 탄창을 BERETTA 권총에 끼워주며 “이제 쏘면 됩니다”고 말했다.

권총을 잡고 팔을 뻗어 표적지를 향해 정조준하며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다.

‘탕!’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는데 총소리가 났다. 뒤로 돌아보니 안전요원이 '옆 사람이 쏜 총소리'라고 눈짓을 했다. 귀마개를 했지만 옆사람 격발 소리에 깜짝 놀란 것이다.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다시 정조준했다. 이번엔 검지손가락에 세게 힘을 주었다.

‘탕!’ 하는 순간 몸이 흔들렸다. 군대에서 ‘엎드려 쏴’를 한 경험은 있지만 권총으로 ‘서서 쏴’는 처음이었다.

“조금 더 위로 조준하세요.”

안전요원의 말에 표적지를 쳐다보았지만 탄착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권총을 들고 격발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머지 5발을 쏘았다.

안전요원이 표적지를 건네주며 “카운트로 가라”고 했다. 사람 상반신이 그려진 표적지를 살펴보니 탄착군은 모두 8개. 이중 1발은 사람을 빗나갔고 1발은 팔을 스쳤다. 나머지 2발은 7m거리의 표적지도 맞추지 못했다. 카운트에서 적어준 점수는 78점.

옆에서 일본인 여성이 표적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니 하트 모양의 표적지 정중앙에 무려 6개의 탄착군이 형성되어 있었다. 점수는 98점. 실탄 사격 경험이 상당히 많은 듯 했다.

“이번엔 38구경 리볼버 주세요.”

다시 사격실 입구로 향했다. 방탄복, 보안경, 귀마개를 착용하면서 보니 투명창을 통해 사격실 안에서 3명이 사격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사격 땐 너무 긴장해 투명창을 보지도 못했다.

“38구경 리볼버는 쏠 때마다 해머를 뒤로 당겨야 합니다.”

안전요원의 설명이 끝나는 순간 “저기, 여자를 인질로 잡고 있는 표적지를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범인을 한방에 날리지 못하면 여자는 죽는다. 이왕 쏠 거라면 화끈하게 쏘아보고 싶었다.

6발 들어가는 회전식 탄창에 실탄 5발을 넣고 사격을 시작했다. 총을 든 범인은 표적지 오른쪽에 있었다. 먼저 여자로부터 먼 범인의 가슴을 향해 3발을 격발했다. 2발은 범인의 머리를 겨눴다. 5발을 쏜 후 안전요원이 다시 5발을 장전해줬다. 2발을 또 머리로 정조준했다. 3발은 심장을 향했다. ‘탕!’ ‘탕!’ ‘탕!’

권총에서 손을 떼는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잘못 쏴 여자를 맞힌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안전요원이 표적지를 건네주었다. 4발은 범인의 머리를 때렸다. 2발은 어깨 쪽, 2발은 손에, 1발은 여자와 겹쳐진 범인의 손가락에 맞았다. 나머지 1발은 범인 어깨 위로 살짝 빗나갔다. 81점. 점수는 높지 않았지만 인질을 맞추지 않았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표적지를 들고 돌아서는 순간 남자 2명이 표적지 여러 장을 들고 카운트로 오고 있었다. 모두 일본인이었다. 탄착군은 대부분 중앙에 몰려있었다. 실탄사격 경험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실탄사격장에 몰리는 일본인들. 그들에게 실탄사격의 ‘짜릿함’은 화재 충격을 넘어서고도 남는 듯 했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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