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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휴대폰문화] 1. 영안실 벨소리 2.4분에 한번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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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민 두명 가운데 한명이 갖고 있을 정도로 이동전화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그러나 비뚤어진 이용문화 때문에 '휴대폰은 공해' 로 여겨질 지경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울려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예사고 잘못된 사용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일본.유럽 등지는 물론 급기야 정부도 하반기부터 운전 중 휴대폰 통화를 규제하려 한다. 일그러진 휴대폰 문화의 실태와 문제점.개선방안을 5회에 걸쳐 점검한다.

"바쁘실텐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고인이 살아계실 때… '삐리삐리리 삐리삐리리…' ."

지난 25일 오후 9시30분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영안실. 40대 문상객은 조문 도중 자신의 휴대폰에서 '밀양아리랑' 벨 소리가 흘러나오자 허겁지겁 휴대폰을 껐다. 하지만 상주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오후 8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본사 취재팀이 이 병원 영안실에서 측정한 결과 50회나 휴대폰 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4분에 한번이었다.

망자(亡者)의 영혼을 보내는 빈소에서조차 많은 사람이 휴대폰의 수신방식을 벨 소리에서 진동으로 바꿔놓는 최소한의 예절도 지키지 않고 있었다.

26일 오후 8시부터 취재팀은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왕십리역까지 타고가며 43분 동안 승객의 휴대폰 사용 행태를 지켜봤다. 객차 한 량에서만 98명이 휴대폰을 썼다. 90% 이상의 통화 내용은 "지금 가고 있어" "지하철이 혼잡하네" 등 잡담이었다.

또 대부분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지하철공사에 따르면 이 구간.시간대의 객차당 유동인구는 5백여명으로 결국 20% 가까운 승객이 휴대폰을 사용한 셈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데" 하며 통화하는 '난데족(族)' 이 판치고 있다. 강의실.회사.도서관.공연장 등에서 휴대폰 벨 소리나 통화 내용을 듣는 것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

예술의전당 안호상(安浩相)공연기획팀장은 "지난해 내한 공연한 소프라노 바바라 본은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관객들에게 휴대폰을 꺼달라고 요구했을 정도" 라며 "외국 음악가들에게 한국은 휴대폰 매너가 없기로 유명하다" 고 씁쓸해 했다.

휴대폰 가입자는 1997년 6백80여만명에서 99년 말 2천3백여만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9월 유선전화 가입자(2천1백여만명)를 추월한 휴대폰 가입자는 올해 말 2천8백만명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휴대폰 사용 문화는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다. 얼마 전 버스 안에서 한 노(老) 교수(60)가 큰 소리로 통화하던 여대생(23)을 나무라다 시비가 붙어 두 명 모두 입건된 일은 저질 휴대폰 문화가 만들어낸 '작은 비극' 이었다.

우상균.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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