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정당과 파당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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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파당(派黨)의 폐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백10여년 전 새로운 국가를 만들면서 미국 헌법제정자들이 제일 염두에 둔 것은 이 문제였다.

이들의 생각은 헌법초안 해설서이자 홍보문서라 할 논설집 '연방주의자' 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대표적 필자인 제임스 매디슨은 '파당(faction)' 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전체 시민의 다수에 이르든, 소수에 머물든 이들은 어떤 공통의 열정이나 이익의 충동으로 결집하고 움직이는데, 그 열정이나 이익은 다른 시민의 권리 또는 공동체의 항구적이고 총체적인 이익에 대립된다." 매디슨은 인간 본성에 비춰 파당의 발생원인을 없앨 수는 없다고 보면서 그 해악을 통제하는 방법을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 에서 찾았다.

요즘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의 어지러운 이합집산을 보면서 '파당의 폐해' 를 다시 절감하게 된다. 더구나 우리의 파당들은 일단 권력을 쥐면 거의 견제와 균형이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행사하지 않는가.

1987년 시민항쟁으로 민주화 궤도에 들어선 이래 우리는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교체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정당 현실을 보면 아직 정치발전의 걸음마 단계를 못 벗어나 있다. 역대 정권마다 정치개혁을 외쳐왔지만 정작 정치개혁의 핵심인 정당개혁은 외면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전개된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 운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기존 정당들의 반응은 정략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당개혁의 방법으로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정당에 관련된 제도를 개혁하고 기존 정당들이 개혁된 새 제도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정당제도 개혁의 중심인 정당민주화, 특히 공천제도 민주화를 법제화해 강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안의 난점은 법제화의 칼자루를 쥔 정당 또는 그 우두머리들이 여기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법제화 여부에 관계없이 바람직한 새로운 정당을 창출하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늘 좌절하고 말았다.

그 점에도 불구하고 새 정당에의 기대는 쉽게 접어두기 힘들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도 50% 전후의 무당파(無黨派) 응답자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바라는 새 정당의 조건은 이렇게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역주의 탈피 둘째, 공천민주화를 비롯한 당내 민주주의 실현 셋째, 일정한 도덕성을 지니면서 전문능력을 갖춘 행동가들의 충원. 한나라당 공천파동에 이어지고 있는 신당 출현은 이들 조건 어느 것에 비춰보거나 좋게 보아주기 어렵다.

우선 신당이 어떤 외양을 띠든 그 중심이 영남이라는 지역기반에 의거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지역정당 탈피가 당면한 정당개혁의 일차적 과제임을 생각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젯거리다.

공천민주화라는 기준에 견줘봐도 신당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신당 추진 핵심인물들은 기존 정당에서 낙천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이며, 이들은 애초 기존의 비민주적 공천절차를 거부했던 것이 아니라 공천결과를 문제삼고 있을 뿐이다.

한편 주도 인물들의 개개 면모를 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도덕성이나 능력 면에서 기피돼야 할 인물들이 왜 계속 수용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 가운데는 개인으로서 존경받을 면면도 보이지만 오히려 안타까움을 남길 뿐이다. 신당 출현으로 진정한 새 정당의 가능성은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정당이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국가에 연결시키는 매개적 존재다. 지역감정에 매달려 권력을 추구하는 것밖에 아무 정체성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파당일 뿐이다.

양건<한양대 법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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