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기자가 탐구한 ‘남녀 주인공 롤코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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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탐구생활’의 코믹 컨셉트에 맞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정가은(왼쪽)과 정형돈.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으로서 이례적인 인기와 화제몰이에 힘입어 나란히 CF도 찍었다. [tvN 제공]

“남녀의 서로 다른 일상을 MRI로 찍는 듯 세세하게 포착한다”는 찬사를 듣는 케이블채널 tvN의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이하 ‘롤코’, 매주 토요일 밤 11시). 가파른 시청률 비행을 하고 있는 이 인기 코너의 두 주인공 정형돈·정가은을 18일 경기도 파주의 한 광고 촬영현장에서 만났다. 프로그램 특유의 ‘~해요’체로 소개하는, 본지 방송담당 남녀기자가 탐구한 ‘남녀롤코생활’.

‘여자’편 정가은
어머, 볼일 보고 손 안 씻는 남자 악수 않는 게 좋겠어요

여자는 남자의 발치에 앉아요. 짧은 미니스커트를 담요로 둘러 감춰요. ‘8등신 송혜교’로 불리는 내 미끈한 몸매(키 1m73㎝, 몸무게 50㎏)를 남자 스태프들이 훔쳐보지 않게 하면서 다리가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기자가 인터뷰하는데 카메라 플래시가 팍팍 터져요. 표정관리를 잘해야 해요. 지긋이 눈을 치켜 뜨다가, 남자의 재치 입담에 적극적인 리액션으로 웃음을 푸핫 터뜨려요. 입을 가리는 센스를 잊지 않아요. ‘CD만하다’고 얘기되는 얼굴이 사진 속에서 더 작아 보일 거예요.

‘남녀탐구생활’ 속 여자처럼 ‘실제로도 여우스럽냐’고 질문하네요. ‘여자’ 편은 내숭 떠는 겉모습이 아니라 그 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호응이 높다고 답해요. 백조가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물 아래서 발장구를 얼마나 치는가에 관한 거라고 덧붙여요. 옆에서 남자가 “너 인터뷰 많이 하더니 말 참 잘한다”고 추켜주네요. 아무렴, ‘롤코’ 때문에 인터뷰한 게 수십 번째인데, 이젠 기자가 한 말인지 내 생각인지 줄줄 나와요.

여자로서 가장 공감한 건 최근 ‘혼수준비’ 편. 찍으면서 눈물이 글썽 했는데 시청률도 자체 최고(4.2%, 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하고 반응도 뜨거웠어요. 남자 편에서 가장 질색한 건 화장실 편. 남자분들 정말 볼일 보고 손도 안 씻어요? 인터뷰하는 남기자에게 물어보니 “전 안 그렇지만 그런 사람도 있죠”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헤어질 때 악수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형돈과 동갑(31세)이지만 생일이 빠르다며 오빠라고 부르라고 우겨서 그렇게 불러요. 그래야 밥 한술이라도 얻어먹어요. 형돈이 요즘 대세는 가은이라고 말해주네요. 이런 센스쟁이. 연기 많이 늘었다고 칭찬도 하네요. “너 첨엔 표정이 한가지였잖아. 내가 여러 번 찍을 필요 없다고, 그거 다 돌려쓰라고 핀잔 줄 정도로.” 살짝 흘겨준 뒤 마주 웃어요. 실제로는 ‘롤코’ 속 여자처럼 ‘오버’스러울 정도로 표정이 풍부한 편인데, 카메라 앞에서 긴장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게 해준 ‘롤코’는 연기생활 7년차에 만난 행운이에요.

‘롤코’ 인기가 높아지면서 ‘스폰지’ ‘세상을 바꾸는 퀴즈’ 등 다른 프로 섭외가 물밀 듯 와요. ‘롤코’에서도 코너 분량이 많아져서 형돈과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이젠 각자 다른 파트너와 찍어요.

‘롤코’가 10년, 20년 이어지면 최불암·김혜자 커플처럼 우리를 부부로 아는 사람도 나올 거예요. 그때까지 지금 시청자와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심리진단’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이런, 젠장. 그땐 저도 40대네요. 정극 연기자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차근차근 밟아갈게요.

강혜란 기자

‘남자’편 정형돈
촛불 100개 켜고 닭살 청혼
여자도 생고생 해봐야 해요

남자는 역시 개그맨이었어요. ‘무한도전’에선 못 웃기는 ‘어색한 뚱보’ 캐릭터지만, 실제론 달라요. 인터뷰 내내 빵빵 터지는 코멘트를 사정 없이 날려요. ‘남녀탐구생활’의 대박 행진도 남자의 타고난 개그감 때문인지도 몰라요.

남자에게 질문을 하면 바로바로 답이 튀어 나와요. 여자처럼 또박또박 답하진 않지만, 듣고 보면 맞는 말을 짧게 툭툭 던져요. “남녀탐구생활 대본 처음 받았을 때 대박 날 거란 감이 왔냐”고 물었더니 “별로 일거리가 없어서 그냥 한 건데요”라고 답해요. 킥킥 웃음이 터졌지만, 가만 보니 정확한 답이에요.

어쨌든 여자와 호흡이 잘 맞는 건 사실이에요. 촬영하느라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만났어요. 인터뷰하면서도 계속해서 여자와 장난질이에요. 여자의 답이 겉돌면 “말이 꼬이면 경솔했다고 바로 인정해”라며 큰 소리로 웃어대요. 여자의 말이 좀 길어지면 “저는 그냥 e-메일로 할게요”라며 장난스레 툴툴대기도 해요. 그때 여자가 한마디 해요. “형돈 오빠가 무식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똑똑해서 놀랐어요.”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려요. 그래도 다들 웃으니 따라 웃어요.

남자는 부산 출신이에요. 누가 봐도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에요. 남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대표 선수로 손색이 없어요. 그런데 남자는“‘남녀탐구생활’은 대본이 너무 좋아서 정형돈이 아니라 누가 해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하네요. 겸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 쳐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에서 ‘쉬야’를 묻히고도 손을 안 씻는 따위의 연기는 정형돈이 아니면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남자가 가장 공감한 것도 화장실 편이래요. 그러자 남자는 “아 그러네요. ‘깔끔한 사람만 아니면 누구라도 해도 된다’로 바꾸죠”라고 말을 고쳐요. 그래도 자기가 깔끔하지 않은 건 아는 눈치에요.

남자는 프러포즈 편도 재미있게 찍었대요. 하트 모양의 촛불을 켜고 “사랑해” 어쩌고 하는 닭살 돋는 내용이에요. 찍으면서 여자들도 촛불 100개씩 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이 남자, 실제론 프러포즈도 안 하고 결혼에 골인했다네요. 남자는 지금 결혼 3개월차 반짝반짝 신혼 부부에요. 미모의 방송작가를 꼬드겨서 결혼했어요. 그래선지 혼수 준비 편을 찍을 때 공감이 많이 갔대요. 부인님께서도 ‘남녀탐구생활’의 열성팬이래요. 같이 보면서 “맞아 맞아 우리도 그랬지”라며 깔깔댄대요.

남자는 여자와의 찰떡 궁합 덕분에 자신의 연기력도 늘었대요. 이대로 쭉 10년 이상 인기를 유지하는 방송이 됐으면 좋겠대요. 남자만의 바람은 아닐 거에요. ‘롤러코스터’ 팬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거에요.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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