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3주년] "미국정부 테러 배후 깜깜 내 남편은 누가 죽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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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전 세계 68개국 출신 3000여명이 한날한시에 숨지거나 실종됐다. 사상 처음으로 본토를 공격당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장악했고, 세계를 피아(彼我)로 구분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마드리드 등으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번져갔고 유족들은 아직도 9.11의 의문점과 씨름하고 있다.

남편이 죽은 지 3년. 크리스틴 브라이트와이저(33)의 왼손 약지에는 아직도 결혼반지가 끼어져 있다. 참사 현장에서 찾은 그이가 끼고 있던 반지다. 남편이 일하던 캔터 피츠제럴드는 월가에서도 손꼽히는 채권 중개회사였다. 이 회사는 늘 다른 회사보다 한발 앞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그 부지런함 때문에 9.11 테러로 전 직원의 3분의 2인 658명을 잃어야 했다.

"출근시간이 조금만 늦었어도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은 브라이트와이저만의 것이 아니다. 패티 카사자(43).로리 밴 오켄(49).민디 클라인버그(42)도 같은 넋두리를 되뇌인다. 워싱턴 정가와 언론에 '뉴저지의 여인들'로 알려진 이들은 테러 전까지는 서로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넷을 맺어준 건 남편을 잃은 동병상련의 정, 그리고 대체 남편이 왜,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이들은 9.11 테러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여 왔다. 지난 4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의회의 9.11 테러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끌어내는 데도 이들의 힘이 상당히 작용했다.

9.11 조사위원회가 지난 7월 600쪽짜리 보고서를 펴낸 뒤 이들의 마음은 더욱 편치 않다. 보고서는 정부가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열번이나 놓쳤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오켄은 "모든 미국인이 9.11을 잊지 말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참사 후 1000일이 지나도록 미국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테러를 조종한 오사마 빈 라덴을 잡지 못했으며, 막강하다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캐낸 사건의 진상이 보잘 것 없다는 게 불만이다. 테러 가능성이 큰 줄 알면서도 잘못 대처했다면 당연히 문책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없는 것도 못마땅하다.

이들은 지난 2일 알카에다와 이들을 방조한 혐의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상대로 70억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남편들이 몸담았던 회사가 맨해튼 연방법원에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이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브라이트와이저는 "우리는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 단지 그것이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뉴저지의 여인들'은 밖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도 속으론 여전히 3년 전의 공포에 떨고 있다. 다른 유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 타임스가 최근 유가족 339명에게 물어본 결과 아직도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대답이 절반에 달했다. "그 후론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다시 안 간다"는 응답도 당시의 충격이 여전히 유족들을 짓누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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