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피일 발표 미루며 지치게 유도…JP식 진빼기 공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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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JP에게)나와 함께 동반 정계은퇴나 하자고 전하세요. " 충남 서산에 내려가 있는 자민련 한영수(韓英洙)부총재는 23일 오전 이수영(李洙榮)명예총재 비서실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이렇게 쏘아붙이고 끊어버렸다.

李실장이 두차례나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통화를 원하신다" 고 전했으나 끝내 거절했다.

JP는 이날 점심식사를 하러 5층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공천탈락이 확실시된 김종호(金宗鎬)부총재.이인구(李麟求)의원측 지지자 10여명에게 둘러싸였다.

이들이 "탈락이유가 뭐냐" 고 거칠게 항의하자 경호원들이 저지에 나섰고 옆에 있던 취재진과 뒤엉키며 수라장이 됐다. "왜들 그래" 하며 자리를 피하는 JP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김고성(金高盛)의원 지지자 3백여명이 당사 앞에서 돌과 계란을 집어 던지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같은 기류 때문인듯 오후 2차 공천자 명단에선 한영수.김종호.박준병 등 부총재 3명의 지역구가 빠져있었다.

JP의 측근은 "명예총재께서 한나라당의 공천파동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성급히 중진들을 내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고 말했다.

사실 이날 명단은 이미 3~4일 전부터 공천심사위에서 확정해 놓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뤄온 것이다. 발표범위도 막판까지 오락가락하다 최소폭으로 줄였다.

이같은 자민련의 공천양태는 JP 특유의 '진빼기 전략' 때문이라고 당직자들이 말했다. 결론을 내려놓고도 발표를 연기하면서 탈락자들이 먼저 제풀에 지쳐 떨어져나가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탈락설이 나돌던 이인구 의원으로부터 스스로 정계은퇴 의사를 전달받은 뒤 탈락을 확정지은 것도 그런 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막판 뒤집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어준선(魚浚善)의원에게 밀린 박준병 부총재는 여전히 공천을 장담하고 있다.

김종호 부총재도 재심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로 공천심사위에서 탈락이 확정적이었던 아산의 이상만(李相晩)의원은 이날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JP와 담판을 벌여 공천을 내락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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