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주중대사 교체 결정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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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나무가 아닌 물에서는 물고기나 자라만 못하고, 천리마도 험준한 곳을 넘을 때는 여우나 너구리만 못하다(猿獮猴錯木撤水,則不若鱉. 歷險乘危,則騏驥不如狐貍).”이는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말로서 노중련(魯仲連)이란 식객이 제나라 재상 맹상군(孟嘗君)에게 “사람은 각각 특기와 전문성이 있으니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충고한 대목이다. 정파의 대립과 전문가 부족으로 인재풀이 잘 가동되지 않는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1월13일 우리정부는 주중 대사와 주 러시아 대사를 전직 장관급 관료출신들로 교체키로 내정하여 한반도 주변 4강국에는 모두 전문 외교관이 아닌 인물들이 대사직을 맡게 되었다 .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국장급을 대사로 보내는 데 왜 우리는 총리급이나 장관급을 파견하여 굴욕외교를 자청하느냐?” 는 비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신임 주중대사가 우리 대통령과 친근한 고위급 출신 인사이니 한-중 관계가 더욱 긴밀해 질 것이라는 기대 어린 평가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일국의 대사는 자국 정부를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명예로운 직책이다. 그러나 직무면에서 보면, 대사도 본국정부의 외교방침과 훈령에 따라 대외 교섭업무를 수행하는 일개 전령(傳令)일 뿐이다.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진정한 외교의 본령을 넘어선 행위다.
그런데 간혹 미국은 대통령 선거에 도움을 준 인물 등을 배려키 위해 중량급 정치 외교관을 대사로 파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기에 외교학의 대부 니콜슨(Harold Nicolson)경은 “미국의 외교관들은 엽관제도(spoil system)하의 정치적 임명으로 국제적 평가에서 치명상을 입고 있으며, 대륙의 외교관들 앞에 압도된다”고 지적했다. 오랜 외교적 전통을 가진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외교관의 정치적 임명이 철저히 배제되는 관행에 근거한 말이다.
우리도 미국의 이런 점을 본받아서인지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소위 주변 4강국에는 총리나 장관급을 대사로 파견하는 직급 과잉의 바겐세일 외교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익에는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이라는 요소 외에 명예가 다치면 안되는 ‘국가위신’이라는 고귀한 가치도 포함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대사를 임명할 때는 상대국과의 형평성과 보편적 외교관행에 따라 적절한 직급의 직업 외교관을 선발하는 것이 품위 있고 순리적인 행위이다. 사대외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총리 등 최고위급 출신을 대사로 임명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저자세 외교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고위직 대사 남발의 이면상을 보면, 사대주의적 발상이나 자리 안배 차원에서 고위직 출신을 대사로 임명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일국의 총리나 장관을 역임한 사람들이 국위나 자신의 체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대사직에 기웃거리는 정치지향적 관료들이 더 큰 문제다. 일찍이 노자는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다(功遂身退天之道)”라는 명언을 남겼다. 상당한 정도의 녹봉을 먹었으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외교는 정치의 연장이자 현실이다”라는 말이 있다. 외교에는 국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 국무장관 George Shultz는 “협상테이블 위에서 힘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면 협상은 항복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힘의 논리가 국가간의 중요 현안을 협상하는 테이블을 넘어 상대국의 대사 임명이라는 고유 주권 행위에 까지 작용되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국내 보도에 의하면, 중국측은 현재의 우리 차관보급 주중 대사를 직급이 낮다 하여 푸대접하면서 주미 대사와 격이 같은 총리급 인물을 은근히 요구해왔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내정 불간섭과 평등호혜’를 외교지침으로 표방하는 중국은 그간 한국에 어떤 직급을 자국 대사로 파견해 왔는지 냉철하게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미국도 앞으로는 자국은 겨우 국장급 대사를 파견하면서 한국에게는 장관급이나 총리급 대사 파견을 희망하는 시대착오적 관행을 삼가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에 주중 대사와 주러 대사가 모두 비 외교관 출신 인사들로 내정된 데 대해서는 우리 외교통상부도 그간 중량감 있는 중국 및 러시아 외교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한 점을 깊이 각성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세계적 강자로 부상할 서남아의 맹주 인도와 자원대국 인도네시아에 대한 전문가 양성도 시간이 촉박함을 통감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과 더불어 G2로 부상한 거인 중국은 우리에게 경제분야는 물론 외교안보,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미국 못지않은 주요국이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 내정된 주중대사는 그간 MB정부의 ‘대미 편향, 중국소홀’이라는 평을 불식시키고, 한-중 외교 현안과 북핵문제, 그리고 국제이슈 등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거양하여 대통령의 남자였다는 기대치에 부응해주기 바란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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