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축구부터 바꾸자] 中. 합숙훈련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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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난해 국내외 9개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초등학교 축구 전국 최강인 서울 동명초등학교에는 조립식으로 지은 축구부 숙소가 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25명의 선수들이 한 방에서 먹고자며 훈련을 마친 후 공부도 함께 한다.

이 학교 선수들은 1년 내내 이런 합숙을 한다.

토요일 오후 집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이들이 '운동선수' 이기 이전에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훈계를 받으며 자라야 할 '어린이' 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처사다.

문제는 성적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이러한 '연중 합숙' 을 따라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중.고등학교 축구부도 대부분 합숙을 한다.

지도자들은 팀워크를 다진다는 명분과 선수 통제가 쉽다는 실리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학생 시절을 합숙소에서 보낸 많은 선수들은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배웠다고 실토한다.

선.후배가 한 방에 모여 지내다보니 음주.흡연.구타.기합 등 좋지 못한 습관이 전수되고 후배들은 선배 눈치 보느라 책 한 페이지 읽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한 프로선수는 "중1때 선배들 빨래가 너무 많아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합시다' 라고 했다가 엄청나게 맞았다" 고 말했다.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린 지도자와 내 자식 운동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생겨난 합숙은 분명 학원스포츠에서 사라져야 할 폐습이다.

이런 폐쇄구조 속에서 자란 선수는 '창의적인 축구' 와 점점 멀어지며, 학부모는 합숙비 부담에 허리가 휜다. 외국에서는 원정경기 외에 선수끼리 모여 지내는 합숙이란 있을 수 없다.

자발적으로 합숙을 없애지 못한다면 교육부나 축구협회가 앞장서 엄격히 금지시켜야 한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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