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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 2년 만에 공식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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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구재상 사장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숨겨진 성장주를 발굴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차전지 사업으로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한 LG화학은 미래에셋이 2006년부터 사들이기 시작한 종목이다. 당시 7만원 후반대이던 주가가 현재 20만원을 넘나든다. 현대중공업, 동양제철화학, 서울반도체, 엔씨소프트…. 모두 미래에셋이 일찌감치 점찍은 종목들이다. 이들의 주가 역시 차례로 날개를 달았다. 그래서 ‘미래에셋 따라 하기’라는 투자법도 유행했다.

물론 ‘성장통’이 없을 순 없었다. 승승장구하던 미래에셋의 ‘국민 펀드’들은 지난해 금융위기와 함께 수익률이 급전직하했다. 투자자들의 원망 어린 시선도 받아야 했다. 시장은 곧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번엔 환매가 이어지며 펀드 시장은 몸살을 앓았다. 구 사장은 “엄청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그는 다시 곳곳에서 풍겨오는 ‘성장의 냄새’를 맡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그리드·전기자동차·대체에너지·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그는 인터뷰 내내 ‘새로운 개념의 성장’을 얘기했다. 그가 공식 인터뷰를 하는 것은 2년 만이다. “회사가 커지면서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인터뷰는 12일 여의도 본사 사장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연초 비관론이 횡행하던 때 코스피가 연말에는 1500선까지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근거가 뭐였나.

“지수 얘기를 하면 안 되는데, 너무 답답해서 그랬다. 하지만 아무도 안 믿어 주더라(웃음).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외국 애널리스트들도 갈수록 한국 기업을 인정하는데 오히려 국내에선 평가에 인색하다. 원화 값이 달러당 900원일 때도 우리 수출기업은 잘 버텼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 그 효과가 증폭될 것으로 봤다. 물론 우리 기업들이 잘한 건 단순한 환율 효과가 아니라 수년간 체질 개선을 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여 온 결과다. 이제 우리 상장사 중에 순수 내수주는 없다. 신세계·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이 중국으로 나가는 것을 보라. 앞으로는 모든 기업이 글로벌 경쟁구도에서 얼마나 비교 우위를 갖고, 얼마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질 것이다.”

-요즘 어떤 기업들에 주목하고 있나.

“성장이 있는 곳에 수익도 있다. 1990년대에 코스피지수는 10년간 500~1000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투자 기회는 있었다. 당시 3만원 선이던 삼성전자 주가가 지금 70만원대 아닌가. 지금도 시장에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기업이 많다. 더 치열해질 경쟁 속에서 위너가 될 기업을 찾는 게 요즘 가장 큰 관심사다. 이미 코스피 지수가 2000일 때보다 주가가 더 높은 기업들이 있다. LG화학·현대차·삼성테크윈·LG생명과학·삼성SDI·삼성전기….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기업을 선호한다. 성장 비전을 보고, 글로벌 경쟁력을 평가하고, 기술의 상업화 가능성을 체크한다. 국내 기업에 바라는 건 장기적인 성장 확보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투자자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뭔가.

“세계 경제의 축이 신흥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래 만난 글로벌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아시아로 자금을 더 옮길 생각을 갖고 있었다. HSBC가 최고경영자의 사무실을 홍콩으로 옮기는 걸 보라. 중국 등 신흥시장은 앞으로 선진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의 ‘소비자’로 부상할 것이다. 위안화가 절상된다면 소비 여력은 더 커진다.”

-신흥시장 중 가장 유망한 투자처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중국을 가장 좋게 본다. 길게 보면 꾸준히 갈 거다. 최근 인사이트 펀드의 중국 투자 비중을 줄였던 건 단기적으로 수익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믿음은 여전하다. 달러 약세로 원자재 가격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고 보면 브라질도 유리하다.”

-국내 증시가 조정을 받았다. 시장은 내년 이후의 불확실성을 걱정하고 있다.

“단기적인 부침은 있겠지만, 기업 이익이 꾸준히 늘면서 시장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완만할 것이고, ‘자산 거품’을 걱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내년에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지수에 편입된다면 외국인들이 주식을 더 사들일 가능성이 있다. 기관과 국내 투자자도 올해 많이 팔았기 때문에 대기 매수세가 충분히 있다. 다만 올해보다는 기대 수익률을 다소 낮춰야겠다.”

-금융위기 이후 ‘장기 투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펀드 환매도 이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장기·분산 투자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적립식으로 꾸준히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가 회복도 가장 빨랐다. 디스커버리 펀드도 9·11 테러 당시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696%의 수익률을 내지 않나. 고금리 시대는 다시 오기 어렵다. 투자 쪽에 자산을 배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거시지표를 보면 됐지만 앞으로는 구체적인 종목 선정이 중요해진다. 개인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분석하고 적시에 투자하는 건 한계가 있다. 펀드의 유용성이 거기에 있다.”

-2007년 고점 때 미래에셋이 ‘펀드 쏠림’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있다.

“그때는 국내 증시가 과열돼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2007년부터 해외펀드를 강화했다. 하지만 아시아가 아닌 미국·유럽이 잘못되면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지난 한 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고객 자산을 지켜야 된다는 엄청난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보냈다. 세계 시장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해외 출장도 많이 다녔다. 좀 더 길게 보고 평가해주길 부탁드린다.”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 의사를 밝힌 뒤 보유 지분을 팔았다. 기관투자가의 역할론에 대한 입장은.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다.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 대상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은 중요한 이슈다. 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경쟁력이 유지되는지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겠다.”

-해외 진출에 공을 들이는데.

“그간 국내 자금을 모아 해외에 투자해왔다면 이제 해외에서 미래에셋 펀드를 판매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인도와 브라질에 이어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펀드 판매와 운용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제조업에서처럼 금융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때가 됐다.”  

글=조민근·한애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구재상 사장은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을 개척해온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설립 12년 만에 56조원을 굴리는 ‘파워 하우스’로 자리 잡았다. 국내 펀드 계좌 열 개 중 세 개가 미래에셋 펀드다. 신흥시장 투자 규모는 영국 바클레이즈GI에 이어 세계 2위다. 구재상 사장은 2000년 미래에셋투신운용 시절부터 대표를 맡아왔다. 그룹 내에서 박현주 회장이 그룹의 비전을, 최현만 미래에셋 부회장이 전략을 담당한다면, 구 사장은 운용을 책임진다. 외환위기가 미래에셋에 도약의 발판을 제공했다면 지난해 금융위기는 시련이었다. 펀드 판매나 수익률 경쟁에서 다른 운용사들의 견제와 도전도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구 사장은 “급격한 변화 속에선 단기 대응에 유리한 중소형 펀드의 성적이 나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장기로 가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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