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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휴대전화 제조에만 편중…한국 ‘IT 강국’ 축배 아직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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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World Bank)이 최근 120개국을 조사한 결과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이 10% 늘어날 때마다 국내총생산(GDP)이 1.3%포인트 증가한다고 한다. 그만큼 인터넷 기반의 정보기술(IT)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또 미래 신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 대다수 국가는 IT 분야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에너지 고갈 시대를 맞아 선진국들은 ‘그린 IT’ 고지를 선점하려고 야단이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 최상위 국가로 ‘IT 강국’ 소리를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한지 따져볼 시점이 됐다.

IT산업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산업분류대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구분하면 한국의 IT서비스업의 부가가치와 고용 비중은 IT제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IT 선진국을 보면 서비스 산업이 제조업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제조업이 압도적이며 그나마도 반도체·휴대전화 등 몇몇 분야에 편중됐다. 인터넷 보급률에 비례해 개인의 인터넷 활용도는 세계 최상위 수준이지만 기업과 산업의 IT 활용도는 크게 떨어진다. 정작 IT를 접목시켜 생산성 향상을 끌어올릴 만한 금융·유통·기업거래 등의 서비스 영역이 글로벌 경쟁력에서 크게 뒤진다는 지적을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IT 분야의 국가경쟁력은 초고속 인터넷망과 같은 하드웨어 기반은 물론이고 인력 수급, 연구개발(R&D) 투자와 지원, 그리고 기업의 창의력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키울 제도와 시장환경 등을 종합해 판정한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와 외국 기관들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여러 해 전부터 들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민이건 관이건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인상이다.

뛰어난 디자인과 창의력을 갖춘 미국 애플이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과 스마트폰 ‘아이폰(iPhone)’으로 보여 준 화려한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IT 단말기에 소프트웨어를 접목시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동반 성장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IT 인프라를 토대로 바이오테크놀로지(BT)·나노테크놀로지(NT) 등과의 융합기술을 개발하는 전략 산업군을 키워야 한다.

글로벌 IT 전략으로 유망한 분야는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라고 하는 차세대 전력망과 온라인 원격의료 등을 들 수 있다. 온라인 의료의 경우 미국은 GE·시스코·인텔·마이크로소프트·구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이미 앞다퉈 뛰어들었다. 세계 최고령 국가의 하나인 일본은 의료서비스에 IT를 활용하기 위해 이미 1998년 원격진료를 합법화했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원격진료 개념을 의료법에 도입했지만 정작 보건의료기관이 아니면 건강관리서비스는 여전히 불법으로 돼 있다.

IT서비스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또 진입장벽을 허물어 IT를 기반으로 BT·NT에 자동차·섬유 등의 전통 산업은 물론이고 관련 서비스업까지 묶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동반 성장을 꾀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일찍 ‘IT강국’의 축배를 터뜨린 데 비해 미래를 향한 계속적인 노력을 게을리했다. 지금이라도 냉정한 자기 비판 위에 국가 차원의 IT 미래 전략을 신속하고 과감히 짜야 한다.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bang5555@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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