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안밀린다"…비주류 공천재심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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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얼굴)는 21일 오전 평소대로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전날 밤 시내의 한 호텔에서 묵은 뒤였다.

그는 공천작업이 본격화한 지난 11일 이후 '집밖 생활' 을 계속해왔다. 李총재는 그러나 미사를 마친 뒤 귀가했다. 공천탈락 시위대가 그의 자택(잠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李총재는 양정규(梁正圭)부총재 등 총재단과 이번 공천을 지지하는 고문들에게 "당의 안정을 위해 앞장서 달라" 고 전화했다.

또 공천자들에겐 "흔들리지 말라" 는 내용의 격려전화를 일일이 돌렸다. "정치개혁을 위한 중진 물갈이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는 내용을 강조했다고 한다.

李총재는 "공천 탈락자들로부터 약간의 불만표출은 있지만 결국 잘 수습될 것" 이라는 자신감을 표시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李총재는 '승부수로 던진 공천실험' 의 성공을 위해 수위를 조절해 방어에 나서고 있다.

우선 여론을 자기쪽으로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해 '개혁공천의 설득력' 을 높이려 하고 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물갈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야당이 거역할 수 없었다" 고 했고, 맹형규(孟亨奎)총재비서실장은 "李총재의 고뇌의 결단" 이라고 강조했다.

또 당에서는 "이기택.김윤환 고문을 포함한 중진탈락에 대해 '적절한 조치' 라는 답변이 압도적" 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정공법(正攻法)도 내놨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냉각기를 갖고 당의 선거대책본부를 출범시키며 공천자 대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李총재의 한 측근은 비주류측의 공천재심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한번 밀리면 걷잡을 수 없다" 고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인데 명분없는 신당 창당은 계획하지 않을 것" 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와 함께 비주류측을 자극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오세훈(吳世勳).원희룡(元喜龍)변호사 등 386세대 공천자 20여명의 이날 기자회견이 당분간 연기됐다.

이들은 "우리는 새 정치를 위해 입당했을 뿐 이회창계가 아니다" 고 나설 예정이었다.

李총무는 회견 강행을 주장하는 吳변호사 등에게 "당을 정말 소수당으로 만들려고 이러느냐" 며 강하게 만류했다.

또 李.金고문에게는 비례대표의원직을 내미는 한편 李총재가 직접 설득하기로 했다. '탈당을 막는 데 최선을 다했다' 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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