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기획] 선거용 유령단체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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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0일 오후 1시 천안역 광장에서 열린 '충청사랑 다짐 헌혈대회' . 연단에 오른 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종필 명예총재(JP)를 낙천대상 명단에 포함시킨 것은 JP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다. 총선시민연대는 사과하라. " 박수가 터지며 분위기는 고조됐다.

그러자 청중 사이에 주최측 인사가 손가락을 잘라 총선연대에 보낸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듣기에도 섬뜩한 단지(斷指)의식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만류로 가까스로 철회됐다. 천안경찰서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 전투경찰 4개 중대를 배치하고 주최측을 설득한 결과다.

대회 주최자는 '한국종군연예인협회 충남지회' . 그러나 이 단체는 이름만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천안경찰서 정보과 정윤재(鄭允在)반장은 "손가락을 자르려 했던 사람은 옛 주먹계 대부 조모씨와 추종자들로 종군연예인협회는 명목상으로 내세웠을 뿐" 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헌혈대회였지만 실제 헌혈한 사람은 주최측 70여명 중 13명에 불과했다. 실상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맞받아치려는 일종의 맞불집회였던 셈이다.

시민단체들의 4.13총선 낙선운동 분위기에 편승한 각종 단체들의 불.탈법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헌혈운동이나 자원봉사 등의 시민운동을 빙자한 선거운동이 두드러진다.

기존 단체의 이름만 빌려 정치행사를 치르는가 하면 자신이 직접 만든 유사(類似)시민단체를 지역 총선연대에 가입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아예 실체가 없는 유령단체도 많다.

이달 초순 국회 의원회관엔 여당의 金모 의원을 맹비난하는 괴서한이 나돌았다. 그러나 편지 작성자로 된 목포지역 4개 시민단체 중 3개는 유령단체이고 한 곳은 이름을 도용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25일께 경기도 성남시내 버스정류장 20여곳엔 한나라당 현역의원을 반대하는 A4용지 전단이 나붙었다. 물론 불법이다.

전단 작성자는 'B청년회' . 청년회측은 "우리는 총선연대에 소속된 단체" 라고 했다. 그러나 총선연대측은 "청년회는 가입신청을 했을 뿐 아직 가입이 결정되지 않았다" 고 확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달 초 낙천자 명단을 발표한 광주.전남지역 시.도민 연대는 며칠 뒤 상임집행위원 李모씨를 해임했다.

李씨가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대구에서는 출마예정자인 李모씨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H시민포럼' 이 지역시민연대에서 축출됐다.

한편 '새××시민연대' 나 '××권 발전운동본부' 등 급조된 시민단체 활동이력을 내미는 출마준비자들이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총선 출마자들이 상근직원 1~2명의 시민단체를 급조한 뒤 시민운동가를 사칭하거나 관련있는 시민단체를 내세워 지지세를 부풀리는 등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김호열(金弧烈)선거관리관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각광을 받자 이런 저런 단체들이 급조돼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며 "이같은 불.탈법 선거운동을 엄중히 가려내 일벌백계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기획취재팀〓김기봉.이상렬.서승욱.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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