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열 총선정국과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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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라 전체가 온통 총선으로만 몰려가고 있는 최근의 정국이 극히 염려스럽다. 4.13 총선 결과가 마치 정권과 국정의 향배를 결정하고 심지어 나라와 개인의 운명까지 좌우할 것처럼 여야 지도자들은 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거혁명' 을 실현시키겠다는 시민단체들은 '음모론' 공방과 '합법성 딜레마' 때문에 일단 주춤거리고 있'으나 불원간 엄청난 선거 파란을 일으키게끔 돼있'다.

여야의 공천과정에서 굉음 발생은 새로운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며칠 전에는 명색이 한 나라의 각료들인데 이들을 '선거용 소모품' 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까지 낳으면서 부분 개각이 행해졌다.

'정형근(鄭亨根)의원 체포사건' 은 우리나라에서의 법치.정치.검찰관계의 풀기 어려운 고등수학 방정식 모형을 총선정국에 맞춰 제시한 것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심지어 신중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갖춘' 김정일(金正日)론을 폄으로써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김정일의 화답을 기대하는 선거용 '남풍(南風)' 이 아니냐 하는 학생들의 질문을 낳게 해 정치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4.13 총선의 중요성은 한국병의 근원이 돼온 정치권의 모습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에 있다.

여소야대에 따른 국정운영의 난맥을 우려한다거나, 김대중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결과가 돼야 한다는 것 등은 여야 나름의 선거전략적 호소일 수는 있으나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정의 내릴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정치권이 선진화만 된다면 대통령제하의 여소야대나 연립정부 형식이 문제될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여야가 4.13 총선을 향한 과열정국을 연출하고, 언론과 시민이 무당굿판에 끼어들고 있는 형국을 낳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조기과열 선거정국을 민주주의의 당연한 과정으로 보아 넘겨도 될 것인가.

우리가 우려해야할 점은 총선과정이 과열돼 불법부정과 혼탁을 야기할 경우 총선결과에 따른 세력구도 변경과 물갈이 폭에 관계없이 정치권력 전체는 다시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됨이다.

더 나아가 총선이 끝나자마자 현직 대통령은 차기 총선의 공천권과 무관하게 되고, 여야 모두 차기대권의 향방을 향해 이합집산이 이뤄질 것이니, 대통령의 레임덕은 더 일찍 시작되고, 야당은 춘추전국의 군웅할거 양식으로 치닫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당적인 정략정치와 지역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되고 정치는 다시 만병의 근원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측은 극단적인 비관론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의 양측면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고려할 수 있는 능력있는 우리의 대통령임에도, 이미 지난해 신당창당에서부터 시작해 다가올 4.13총선까지, 이에만 몰입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음에 대해 국민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어떠한 사람들은 반독재 투쟁과 대권경쟁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적 인생역정이 '경기자적' 성격을 주조시킨 결과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은 '충성파' 와 참모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아니면 金대통령의 선거에 임하는 자세가 세간에 잘못 알려진 탓일까하고 갸우뚱하기도 한다.

어떻든 이번 총선과정이 불법파행적일 경우 이에 따른 최종적 책임추궁은 대통령에게로 향하게 돼 있는 것이 '잔인한' 정치세계의 특성이다.

金대통령은 2년 전 취임할 때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바퀴로 나라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공언하면서 분명 정치의 선진화를 위한 개혁과 지역주의 타파, 그리고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함축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는 가위 역사적이었다고 본다.

이제 국민들은 金대통령이 행한 경제적 업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과연 정치적 업적을 후세에 남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정치적 실패는 대통령 개인의 명예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의 행.불행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4.13 총선과정은 그렇기에 총선의 결과보다 더욱 중요한 시험대라는 데 대통령도 실천적 차원에서 동의해줬으면 한다

김동성<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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