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김재길 'KBS야, 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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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참에게 듣는 '뒷얘기' 는 재미나다. 굵직굵직한 사건부터 시시콜콜한 에피소드까지 자분자분 듣고 있다 보면 그것이 곧 역사이기 때문이다.

'KBS야, 너 참 많이 컸구나!' (김재길 지음.세상의 창.1만2천원)는 한국 스포츠 방송의 역사다.

TBC.KBS 등을 거치며 국내 첫 스포츠 전문PD로 활약해온 저자가 1961년 KBS가 개국한 이래 한국 스포츠 방송이 걸어온 길을 재미난 일화 중심으로 엮었다.

우선 '위기 극복담' . 방송이라는 매체 특성상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권투선수 김태호가 푸에르토리코의 세라노와 타이틀 매치를 벌일 때다.

현지와 서울 사이에 개설된 국제 전화가 먹통이 돼 2절까지만 하기로 한 애국가를 4절까지 연주하는 식은땀 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국체전 농구 결승 때는 지각한 캐스터 대신 20분간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직업적 욕심이 발동한 '도둑방송 무용담' 도 있다 WBC 헤비급 챔피언 캐시어스 클레이(후에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와 WBA 어니 테렐과의 '세기의 대결' 을 AFKN에서 녹화를 떠 방영했다.

당시는 위성 중계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법을 어기긴 했지만 어쨌든 시청자들은 알리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전성기의 모습을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최초의 위성 중계는 그로부터 3년 후인 프로레슬러 김일의 일본 인터내셔널 선수권 대회때 이뤄졌다.

스포츠 방송 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분투기' 는 화려한 TV 화면 뒤에 가려진 방송 종사자들의 땀과 노력을 실감케 한다.

그 하나로 한국 방송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서울올림픽의 경험을 들려준다. 철저히 중립적 화면을 만든다는 대원칙 아래 모든 종목의 경기를 규격화했던 '영상 언어의 맞춤법 통일안' 이 서울올림픽을 치르며 확립됐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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