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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란토 직무정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동티모르 유혈사태 진상 조사와 관련해 위란토 정치.안보 조정장관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인도네시아 콤파스 데일리지에 따르면 와히드 대통령은 13일 밤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란토의 직무를 일시 정지시켰다" 며 "위란토의 업무는 수르자디 수디르자 내무장관이 대행하게 된다" 고 말했다.

위란토의 직무 정지는 검찰 수사가 완료되는 한달 정도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사실상 내각에서 축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결정은 위란토를 내각에 잔류시키기로 했다는 대통령궁의 발표가 나온지 불과 몇시간 후에 내려진 것이다.

이날 오전 와히드 대통령과 위란토 장관의 면담 직후 대통령궁은 "최종 수사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위란토의 장관직은 유지될 것" 이라고 발표했었다.

관측통들은 와히드가 마음을 바꾼 것은 위란토의 내각 잔류 결정이 군부와의 대립에서 대통령이 후퇴한 것으로 비춰지는 등 뜻하지 않은 확대 해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날 오전 위란토의 장관직 유지 결정에도 불구하고 위란토 축출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법적인 절차와 두 사람간의 인간관계를 고려, 위란토의 '체면' 을 살려주는 모양새를 갖추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와히드는 위란토와의 면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위란토가 (사임하기 전)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고 말해 법적 정당성을 의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엔 자신의 대통령 선출과정에서 위란토로부터 결정적 신세를 졌던 와히드로서는 '개인적 친분' 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모양새를 떠나 와히드는 결국 군부정치 청산이라는 주사위를 던졌다.

위란토 축출로 상징되는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 추진이 군부 쿠데타 등 정정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이미 군 고위 지휘관들도 위란토의 사임을 요구하는 등 와히드 지지를 밝혔다.

와히드로부터 사실상 쫓겨난 위란토는 순순히 퇴임식에 응하는 등 반발의 기미는 없다.

이는 마땅한 대항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적당히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위란토는 와히드가 제시했던 '유죄평결 후 사면' 카드를 받아들일 것 같다.

하지만 군부내 반대세력이 일부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과 결합해 소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불안은 여전히 감돌고 있다.

일부 정치 반대 세력도 위란토 축출과정에서 보여준 와히드의 잦은 말바꾸기와 즉흥적 발언을 예로 들어 와히드의 리더십이 인도네시아의 경제 재건과 민주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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